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늦은 퇴근을 한 에디터. 선선한 날씨가 퇴근을 반겨주자 문득 지하철에 타기 싫어졌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것은 ‘따릉이’였다. 이 날씨에 자전거라니, 끝내주는 낭만을 기대하며 자전거에 올라탔다.
쉴 틈 없는 오르막길에 결국 다리 힘이 풀렸지만, 내리막길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자전거 타는 장면이 있는 일본 영화들. 일본 영화를 콕 집은 이유는 단순하다. 일본 하면 자전거를 떠올릴 정도로 많은 이들이 자전거를 이용하기 때문. 우리의 자전거 낭만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 않는가.
자전거에 담긴 낭만을 찾는 이들을 위하여.
물에 빠진 나이프

학창 시절, 미래의 여자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탈 것이라는 결심을 하게 만든 영화 <물에 빠진 나이프>. 미소년, 미소녀 연인이 함께 자전거 타는 것만큼 설레는 것이 어딨을까. <물에 빠진 나이프>의 자전거가 이어줬을까, 주인공 역을 맡은 ‘스다 마사키’와 ‘고마츠 나나’는 현실 결혼에 성공했다.
바이크 대신 자전거를 탄 모습이 더 ‘청춘’같아서 인상 깊었달까.
자전거는 뒤에서 꼭 끌어안아야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스로틀이 아닌 페달을 직접 밟는 것도 오버 좀 보태서 사랑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함께 타는 자전거는 집에 데려다준다는 명분으로 서로가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합법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러브 레터
“오겡끼데스까”
영화 <러브 레터>하면 하얀 눈이 덮인 눈밭에서 대사를 외치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러브 레터>는 극 전체가 명장면이라는 사실.

성도 이름도 같은 주인공들. 남자 주인공 ‘이츠키’는 여자 주인공 ‘이츠키’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데 종이 가방을 얼굴에 씌워버리고 도망간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경찰에 신고 당해도 할 말이 없을 행동이었다. 그러나 사랑은 그만큼 위험하다. 자전거는 어리숙한 소년의 마음을 대신해 주었다. 빠르게 도망갈 수도 있고, 빠르게 따라잡을 수도 있고, 때로는 위험한 어린 사랑을 대변해 줄 수도 있다.

자전거, 어쩌면 현실에서도 사랑을 이어줄 매개체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걷기 운동도 멀리했던 우리도 이제 움직일 시간이 왔다. 이 날씨면 뭐든 좋다. 지금 당장 몰래 짝사랑 중인 연인에게 ‘일본 영화처럼 자전거 타러 가자’고, 남자 이츠키처럼 장난을 걸어 보자.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자꾸만 솔로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미안하다. 우울한 마음 안고 자전거를 탄다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나오는 자전거 씬을 상상하기도 한다. 느릿느릿, 자전거를 이끌고 지옥으로 향하는 듯한 마음. 어두운 하늘에 초록색 조명으로 더 우울한 느낌의 연출은 비련의 주인공이 되기 딱이다.

회사 상사에게 호되게 치인 날, 할 일이 많아 퇴근을 해도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날이라면 터벅터벅 지친 발걸음을 자전거에 맡겨보자.
퍼펙트 데이즈
힐링 영화로 유명한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 우리가 상상하는 ‘여유로운 일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역시 그 중심에는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가 자리 잡고 있다. 느긋하게 자전거를 타며 선술집을 오가거나, 장을 보는 모습에 우리는 힐링할 수 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살면서도 무심코 지나치는 자그마한 기쁨들을 다시금 새겨 줄 영화 <퍼펙트 데이즈>.

조현나 평론가는 이 영화에 관한 한 줄 평을 이렇게 남겼다.
“삶은 곧 수행. 그러니 적절한 여백을 즐길 줄 아는 태도로”
느릿느릿 한 자전거처럼, 여유로운 삶을 찾고 싶다면 영화를 떠올리며 타는 자전거가 스치는 바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키즈 리턴
방황하는 청춘들을 위하여.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 <키즈 리턴>은 문제아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운전면허를 못 따는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통수단은 자전거다. 특히 이 영화는 자전거 하나를 함께 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뒤에 타는 게 아닌 서로 마주 보고 자전거를 타기 때문이다.

어느 장면 하나 범상치 않은 영화 <키즈 리턴>. 깡으로 버텨왔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사회생활로 지쳐버린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금 불태울 수 있다.
물론 친구와 이렇게 자전거를 타는 것은 위험하니, 최대한 따라 하지는 말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