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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도 숏폼의 시대가 열렸다

스낵무비, 짧지만 강렬한 단편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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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는 늘 영화계의 가장자리에서 숨 쉬어왔다. 그런데 최근, 그 짧은 숨결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배우 손석구가 제작 및 주연을 맡은 단편영화 <밤낚시>가 전국 CGV에서 단독 상영되며 그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

13분가량의 이 영화는 1,000원에 판매되었다. 단편영화로서는 처음으로 등급 분류 등의 절차를 걸쳐 정식 상영된 사례였다. 약 4.6만 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고, 짧게 소비하는 ‘스낵 무비’의 개념이 생겨났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익숙하게 접하던 짧은 ‘숏폼’ 형태의 영상이 이제 극장가에도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메가박스도 단편영화 상영에 나섰다. 제78회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경쟁 부문에 진출했던 정유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안경>과 <파라노이드 키드>를 묶어 3천 원에 상영했다.

긴 러닝타임과 대규모 자본이 영화를 정의하던 시대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관객들은 짧아도 밀도 높은 경험을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극장도 그 변화에 맞춰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다.

게다가 올해는 미쟝센 단편영화제가 4년 만에 돌아왔다. 국내 유일의 장르 단편영화제가 다시 부활해 극장과 관객 사이를 이어나갈 예정이니, 관심이 생긴 이들이라면 놓치지 않길 바란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깊은 감정과 명확한 시선을 전하는 한국 단편영화들을 추천한다. 상업 영화로 나아가기 전 떡잎부터 달랐던 감독들의 단편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

고형동 <9월이 지나면>

“공모전 설계도 제출을 하루 앞두고 선영의 설계도가 사라진다. 선영은 지연을 의심하고, 승조는 지연을 감싸준다.”

배우 임지연과 조현철의 풋풋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한 번 본 사람이라면 아마 9월마다 다시 꺼내어 보는 영화가 될 것.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를 들을 때면, 조현철과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듣는 임지연의 투 샷이 자연스레 떠오를 테니 말이다. 9월, 어쩌면 당신에게도 이런 사랑이 피어날지 모르겠다.

이충현 <몸값>

“중년 남자가 여자 고등학생과 모텔 방에 들어가 화대를 놓고 흥정을 한다. 학생은 어이가 없지만 남자의 요구를 들어준다.”

<콜>과 <발레리나>의 이충현 감독, 그는 단편부터 남달랐다. 14분가량의 단편영화로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으니 말이다. <몸값>은 한 모텔 방에서 벌어지는 거래를 다루고 있다. 중년 남성과 여고생, 화대에 대한 흥정. 그런데 이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은 단 한 번의 컷 없이 이어진다.

이충현 감독은 알렉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을 오마주해 드럼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웠고, 롱테이크로 영화의 모든 내용을 담았다. 카메라는 좁은 공간을 유영하듯 따라가고, 대사는 리듬을 타듯 교차한다. 

묘한 긴장감과 그 안에 깃든 유머와 반전. 1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은 그가 얼마나 밀도 높은 세계를 구성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구교환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

“주인공 기환은 다수의 독립영화에 출연한 배우다. 그는 본인이 출연했던 작품들의 DVD를 받지 못해 감독들을 한 명씩 찾아다닌다.”

기환이 만나는 감독들은 각자의 사정과 변명을 늘어놓는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한 작품일 터. 영화를 비롯한 예술계에 발을 들여본 사람이라면, 어쩐지 씁쓸해진다.

“그 영화 하나로 나 판단하지 마.”

그 외에도 이옥섭 감독과 배우 구교환은 유튜브 채널 ‘2X9’를 통해 꾸준히 단편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김종관 <폴라로이드 작동법>

“한 소녀가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배우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달아오르고 그녀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6분에 담긴 첫사랑의 기억과 감정들. 김종관 감독의 이 작품 역시 CGV 아트하우스에서 기획한 ‘숏츠하우스’의 첫 번째 작품으로 1,000원에 상영되었다. 최근 공개된 기획전의 네 번째 작품으로는 네오 소라 감독의 <더 치킨>이 선정되어 상영될 예정이다. 

“숏폼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단편 영화라는 훌륭한 숏폼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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