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지로역, 충무로역, 종로역. 역명에 담긴 도로명들은 모두 뜻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인근에서 도로명역을 하나 더 찾을 수 있는데, ‘충정로’다.
위 세 개 도로명은 익숙한 탓인지, 의미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반면 충정로는 그렇지 않을 터. 충정을 뭘까?
10번 출구로 나와보세요

충정로역 10번 출구를 나오면, 충정의 뜻을 알 수 있다. 10번 출구 앞 교통섬에 세워진 동상 하나. 그 동상은 부당하게 체결된 을사늑약에 항거를 위해 자결을 택한 ‘민영환’의 동상이다. 그가 바로 ‘충정’의 주인공이다.
해방 이후 초대 서울시장 김형민은 일본식 도로명을 바꾸는 계획을 실행했다. 그때 민영환을 기리기 위해 시호 ‘충정’을 따와 타케조에조라 불렸던 지역은 ‘충정로’가 되었다.
대한제국 최초였다

민영환은 대한제국 고위 관리로서 최초로 세계 주요 국가들을 일주한 인물이다. 물론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서 세계 곳곳을 순방했다. 1883년 조선이 미국에 파견한 외교 사절단 ‘보빙사’로 미국에서 유럽을 경유해 돌아오며 조선인 최초의 세계일주자로 알려졌다.
1896년 러시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방문할 당시에는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지나.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서 육로로. 건너고 건너고 건너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4월 1일부터 10월 21일까지, 무려 6개월 21일에 걸친 기나긴 여정이었다.
아파트도 최초였다

우리나라 최장수 아파트로 알려진 ‘충정아파트’. 이곳에는 다사다난한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충정아파트는 1937년 건설, 89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시작은 일제강점기, ‘도요타아파트’였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의 장교 숙소, ‘트레머호텔’으로 바뀌었다. 한국전쟁 때는 미국 CIA의 합동고문단 본부로 사용된 이후 풍전빌딩, 그리고 지금의 충정아파트까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2008년 재개발 대상, 2023년 철거를 확정 지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철거 작업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여기에는 ‘김병조’라는 인물이 엮여 있다.
6.25전쟁으로 아들 6형제를 잃었다

1959년, 한국전쟁에서 아들 6명을 모두 잃었다는 아버지 ‘김병조’의 사연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야기는 이승만 대통령에게까지 전달되었고, 김병조는 건국공로훈장까지 수여받았다.
미국까지 감동한 그의 이야기. 김병조는 박정희 대통령이 제2대 국가재건최고희의 의장이었던 시절, ‘풍전빌딩(현 충정아파트)’ 관리권을 통으로 받았다. 풍전빌딩은 당시 5천만 원, 현재 시세로 수십억 원에 달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언론은 김병조를 ‘반공의 아버지’라고 칭했으며, 당대 가장 유명한 반공의 상징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건물주가 된 그는 건물 이름을 ‘코리아관광호텔’로 변경하고, 4층짜리 건물 옥상을 5층으로 불법 증축했다.
모두 사기였다

국가재건회의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의 본명은 김병조가 아닌 김병좌다. 그리고 그에게는 ‘여섯 명의 아들’이 없었다. 모두 가짜였다. 전쟁 직후였기에, 어디서 전사했는지, 탈영했는지 직속 부대장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인 점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 김병조의 건물은 환수되었고, 징역을 살게 됐다. 그는 단순 쌀 배급이라도 받으려 했던 거짓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남아 있다

재개발 확정, 안전진단 ‘E등급’에 철거가 확정되었음에도 철거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5층 불법 증축’ 때문이다. 4층 세대까지는 정상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4층 이하 주민들은 불법 증축된 5층 주민들에게 토지 지분이 없으니, 보상을 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충정공 민영환의 동상과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최고령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는 충정로. 퇴근길 지하철이 지나가는 곳으로만 생각했다면, 한 번쯤 충정로역에 내려 발걸음을 내디뎌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