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청춘들에게 요즘 ‘종로’하면 뭐가 떠오르는지 물어본다면, 아마 가장 많이 나오는 키워드는 ‘야장’일 것이다.
종로 일대, 특히 종로3가 지역을 가보면 길을 따라 야외 테이블이 쭉 늘어서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으로 가득 차고 있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종로는 무게가 다른 곳으로 인식될 것이다. 경복궁, 청와대, 서울시청, 미국 대사관 등. 대한민국의 중요한 기관들이 모두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종로는 타 지역구와는 다른 포스를 풍기는 곳이다. ‘정치 1번지’라고도 불린다.
‘야장의 성지’와 ‘정치 1번지’가 오묘하게 섞여 있는 이곳, 종로에 대해 알아보자.
그야, 여기 다 있었으니까
먼저, 종로는 ‘종’이 있는 도로라 종로라고 이름 지어졌다. 조선 시대의 통금 시간은 밤 10시. 그 시간이 되면 통행금지를 알리는 ‘종루’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이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도 종루가 있던 보신각에서 행사를 진행한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조선의 주요 궁궐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종로였다. 지금의 세종대로 부근은 조선 시대의 행정 기관, ‘육조(六曹)’가 모여 있어 이곳에서 국방, 재정, 인사 등을 모두 관리했다.
‘정치 1번지’라는 별명답게 궁궐과 최고 행정 기관이 조선시대 때부터 종로에 모여있었다. 어디 이 뿐인가, 광화문 광장에서 “아니 되옵니다”를 외치며 상소를 올리던 유생들의 성균관도, 백성과 상인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던 곳도 종로였다.
독립운동도 여기였다
8월은 광복의 달이다.
민족의 아픔이 서려있는 근현대에도 중심의 역할은 계속됐다. 1898년 독립협회의 주도로 ‘만민공동회’가 종로에서 열렸고, 수많은 민중들이 외세의 간섭을 철폐하기 위해 종로에 모였다.
그리고 가장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는 사건이 1919년, 종로에서 일어났다.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
3.1운동이 바로 이곳 종로에서 일어났다. 3.1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계기이며, 대한민국 제헌 헌법 전문에 명시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그 자체이다.
탑골공원, 보신각, 태화관 등 종로를 중심으로 열심히 “조선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역사가 종로 일대에 서려있다.

역대 대통령 3명이 종로 출신이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는 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정치 거물들은 종로를 거쳤다. 특히나 ‘윤보선’, ‘노무현’ ‘이명박’ 3명의 종로 출신 국회의원은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 한다.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성과 상징성이 종로를 정치 1번지로 만들었다. 정당을 대표하는 인물, 차기 대권 주자, 원로 정치인들이 당선을 차지하기 위해 승부를 벌인다.

정치 1번지는 실제로 ‘대한민국 1번지’를 뜻한다. 남파 무장공작원이 청와대를 기습했던 ‘김신조 사건’ 이후 도입된 주민등록번호 시스템에서도 대통령의 관저인 청와대가 있는 곳을 ‘0001번’으로 설정했다. 중앙선관위의 지역구 배치 순서 역시 1번이다.
선거철이 되면 종로구 당선인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장에도 역사가 있다
탑골공원에서 바둑과 장기를 두는 이미지로 유명했던 종로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야장의 성지’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종로의 포장마차 감성, 활발한 상권으로 만남의 장 역할을 하는 종로는 조선시대로 돌아가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종루’를 중심으로 먹거리 장터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한양의 대표적인 상가인 운종가가 위치했다. 한양으로 들어오는 많은 상인들이 종로를 지나가야 했기 때문. 국가의 필요에 따라 부역을 담당했던 국가 공인 상점, ‘육의전(六矣廛)’이 서울 종로에 몰려 있었다.
관청 손님, 시장 손님으로 북적이던 종로였기에, 정보 교류도 활발했다.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내려오는 정치, 경제 정보들은 모두 종로에 모였다. 그래서인지, 언론사도 종로에 모여 있다.
정치, 경제가 모이는 종로. 산책하면서 종로의 상징들을 천천히 바라보면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를 터.
오늘은 종로에서 친구, 연인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