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지퍼도 잘 살펴봐야 하는 시대. 뻑뻑함으로 불편함을 주는 저렴한 중국산 지퍼는 기분 좋은 쇼핑에 아쉬움을 잔뜩 남긴다.
작아서 소홀히 볼 수 있는 지퍼는 옷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칫 잠기지 않으면, 집에서든 밖에서든 봉변을 당할 수도 있을 터. 평소 신경도 안 썼던 지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부자재 중 가장 큰 반전을 줄 수 있는 건 바로 지퍼가 아닐까.

가장 유명한 지퍼 브랜드로는 ‘YKK’가 있다. YKK가 각인된 지퍼가 눈에 보이면 우리는 생각한다.
“이 옷은 지퍼도 신경 썼네”
맞는 말이다. 중국산 지퍼와 가격차이가 2배 정도는 나기 때문에 꽤나 큰 생산 비용을 치러야 하니까.
그런데, YKK만 좋은 지퍼는 아니다. 럭셔리 브랜드나 생산에 아주 공들이는 브랜드는 더 좋은 지퍼를 쓴다. 곧 소개할 지퍼가 옷에 달려있다면, 이 브랜드는 품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옷을 만들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 프리미엄 지퍼 브랜드의 세계로 초대한다.

1만 번 여닫아도 문제없을 겁니다
이미 알고 있는 브랜드라 새로운 지퍼를 빨리 보고 싶다면 넘어가도 좋다. 그러나 아는 맛이 끌리는 법. YKK라고 다 같은 YKK가 아니다.
세계 최대 지퍼 브랜드 YKK는 ‘요시다 공업(Yoshida Kougyou Kabusikigaisya)’의 약자로 전 세계 지퍼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믿을만하고 대중적인 브랜드다.

세계 최대 지퍼 회사인 만큼 다양한 라인업을 가지고 있다. 그중 ‘YKK 엑셀라’ 라인은 YKK에서 가장 높은 프리미엄 등급의 지퍼다.
일반 라인으로도 충분한 성능을 자랑하지만, 엑셀라는 이빨 하나하나 전면에 꼼꼼한 연마를 한 최고 품질의 금속 지퍼다. 프리미엄 지퍼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 작은 이빨들을 하나씩 꼼꼼하게 가공하기 때문에 프리미엄 지퍼들은 일반 지퍼들보다 부드러움이 극대화되는 것.

세계 최대 지퍼 회사 YKK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타입의 지퍼를 가지고 있는 것. 덕분에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성능이 아니어도 디자인을 위해 YKK 지퍼를 줄곧 찾는다.
YKK 사의 지퍼를 고집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는 바로 ‘유니클로’였다. 보통 YKK 지퍼 하나만으로 소재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는 걸 강조할 수 있는데, 유니클로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지퍼를 자랑하지는 않아 주변에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엑셀라를 사용하지 않지만, 이미 YKK 지퍼가 세계적으로 가장 인정받는 지퍼라는 것은 모두가 안다.

아마, 유니클로를 애용하는 사람 중 이 사실을 몰랐다면 유니클로를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지퍼, 브랜드 이미지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고.
지퍼계의 페라리, 람보르기니

리리(riri) 지퍼에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주로 슈퍼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나 페라리가 리리 지퍼의 대표적인 별명. 그만큼 부드럽고 고급 품질을 자랑하는 명품 지퍼 브랜드다.
스위스 출신인 리리는 품질 유지를 위해 다른 곳에 공장을 세우지 않았다. 오직 스위스 공장 한 곳에서만 생산하는 아주 고집스러운 브랜드다. 그래서인지, 다른 공장 많은 지퍼 브랜드들보다 모조품이 현저히 적다고.
리리가 선사하는 부드러움은 바로 작은 지퍼 이빨에 있다. 더 촘촘하게 이빨이 구성되어 있기에 다른 지퍼들과 확실한 차별점을 느낄 수 있다.

에디터가 리리 지퍼를 처음 경험했던 것은 넘버나인 바지였다.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 만큼 부드러워서 슥 여닫아본 뒤에 곧장 최애 지퍼가 되었다. 경험할 때, 페라리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게 될 것.
품질이 좋은 만큼 가격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많이 보인다. 루이비통, 톰포드. 디올 그리고 에르메스에서도 리리 지퍼를 사용한다.

이탈리아어로 ‘지퍼’입니다.
리리와 견주는 프리미엄 대장 브랜드는 바로 ‘람포(Lampo)’다. 람포는 이탈리아어로 지퍼를 뜻하는데 이름부터 정직하다.

람포 지퍼는 친환경 공법을 사용한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지퍼 품질도 우수한데, 유럽 섬유 품질 기관이 주는 ‘오코텍스(Oeko-Tex) 스탠다드 100’이라는 친환경 인증 마크까지 가지고 있다. 오코텍스 인증 테스트는 타 친환경 테스트 표준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유명한 친환경 인증이라고.
발망, 샤넬, 몽클레어 등 람포 역시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애용하는 지퍼다.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리리와 람포는 제품에 어울리는 지퍼로 번갈아가며 사용한다고.

복각할 때는 또 달라요
남성 패션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복각’ 과거의 의류 형태들을 그대로 재현해 내기 위한 노력이 담긴 하나의 문화다. 복각 의류는 지퍼도 빈티지한 지퍼를 사용해야 할 터. 이것도 전문적으로 다루는 브랜드들이 있다. 꽤나 많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YKK가 인수한 ‘유니버설’과 ‘왈데스’, ‘탈론’ 등이 있다.



탈론은 중국에 인수된 후, 품질 이슈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빈티지 탈론 지퍼만 인정하는 분위기다. 버즈릭슨, 슈가케인 등 토요엔터프라이즈의 브랜드들은 ‘크라운’ 지퍼를 많이 사용한다. 크라운 지퍼는 빈티지 지퍼계의 왕이라고 불린다. 과거 밀리터리 아우터에서 자주 보이는 만큼 복각 브랜드들이 애용하는 브랜드이며, 실제로 토요 엔터에서 라이센스를 직접 가지고 왔다고.

빈티지 미군 군복에서는 아이디얼(IDEAL), 스코빌(SCOVILL) 역시 지퍼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빈티지 샵에서 이제 지퍼를 훑다가 언급된 지퍼들을 찾게 된다면 흥분을 멈출 수 없을 것.

지퍼 하나로도 옷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옷은 입었을 때 예뻐야 한다. 그러나 모든 장르가 그렇듯, 알면 알수록 많이 보이고 재미있는 법. 옷 하나에 숨겨진 작은 감동들을 놓치지 않는 패션 생활을 향유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