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꼼 데 가르송의 82-83AW 컬렉션이 발표되었다. 제목은 <파괴(Destroy)>. 이름에 걸맞은 파격적인 컬렉션이었다. 좀먹은 듯한 구멍 뚫린 니트, 막무가내로 착용한듯한 의상들, 워킹 중인 모델들의 옷에 튀어나온 실밥. 그녀의 반항적인 디자인에 그저 찬사만 보낼 수는 없었다.
컬러 팔레트는 모두 무채색이었으니, 이게 정녕 아름다움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가 그들의 의문점이었을 터. 특히나 검은색은 죽음을 애도하고, 어둠을 상징하는 색이지 않는가.
패션 비평가들은 그녀의 디자인을 두고 ‘포스트 아토믹’, ‘히로시마 쇼크’라며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 디자이너를 향한 정치적인 메시지가 가득 담긴 ‘원자 폭탄’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레이 가와쿠보가 보여준 ‘히로시마 쇼크’는 ‘히로시마 시크(Hiroshima Chic)’, 즉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마틴 마르지엘라’, ‘앤 드뮐미스터’, ‘드리스 반 노튼’ 등. 아방가르드와 해체주의를 표방하는 유수한 패션 디자이너들이 레이 가와쿠보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다.
폐허가 된 히로시마를 연상시키다
‘해체주의’. 패션학도들이 열광하는 단어다. 이 개념은 의도적으로 의상을 해체시켜 새로운 형식을 안겨준 꼼 데 가르송이 건넨 충격에서 시작됐다.

1981년, 처음으로 파리 패션위크에 참여한 레이 가와쿠보의 일본 맛은 가히 혁명에 가까웠다. 입지도 않을 것 같은 괴상한 옷들만 런웨이에 나왔다. 물론 하이패션 대부분이 실용성도 전혀 없고 입으라고 줘도 부담스러워 못 입을듯한 옷으로 가득하다. 그래도 기존의 하이패션은 화려함에 눈이 즐겁기라도 했다.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꼼 데 가르송에 흥분했다. 매번 화려함을 추구하는 고루했던 하이패션 씬을 깨부술 새로운 디자인이 드디어 등장했으니 사람들이 꼼 데 가르송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충격적인데
지금이야 거리 문화도 차용하고,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패션 시장이라 꼼 데 가르송의 디자인을 사랑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당시 디자인을 생각하면 왜 ‘히로시마 쇼크’라는 말이 붙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꼼 데 가르송을 직역하면 ‘소년들처럼’이다. 레이 가와쿠보는 여성스러움을 위해 화려하고 에로틱했던 당시의 여성 패션 씬에 칙칙한 돌풍을 몰고 왔다. 원자폭탄 투하 이후 폐허가 된 히로시마를 연상시키는 자극적인 단어들을 사용하면서까지 그녀가 가지고 온 충격을 묘사했다.
“블랙은 가장 심오한 색이다”
레이 가와쿠보가 선보인 히로시마 시크의 가장 큰 특징은 ‘검은색’이다. 컬러 팔레트가 무채색뿐인 신기한 컬렉션은 레이 가와쿠보의 독보적인 행보였다. 그 시절 검은색은 장례식에서 주로 입는 것이라 상당히 반항적인 디자인이었다. 칙칙한 돌풍이라고 칭한 이유이기도 하다.

히로시마 시크를 함께 대표했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는 “검은색을 겸손하면서도 거만하고, 게으르면서도 편안한데 신비롭기까지 한 컬러”라고 언급했다.
히로시마 쇼크를 기점으로 기점으로 검은색은 패션의 필수 컬러가 되었으며, ‘올블랙’은 패션 피플들이 향유하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암묵적으로 일상에서의 블랙이 금기시되어 있던 당시의 풍조가 계속되었다면 우리는 지금 올블랙의 맛을 못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빚진 셈.
끊임없는 반문


꼼 데 가르송의 혁명은 계속되었다. 아름다움이라는 말에 계속해서 반문했다.
이는 또 다른 특징인 ‘미완성의 미학’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완벽한 슈트’. 80년대를 떠올려보자.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한 증권맨들의 상징인 ‘슈트’가 유행이었던 시절이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같은 슈트 브랜드가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었다. 여성복 역시 ‘나는 우아한 여성이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패션으로 잔뜩 풍겼다.

꼼 데 가르송은 그 사이에서 미완성의 미학을 선보인 것이다.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반대하는 레이 가와쿠보이기에, 실밥이 튀어나오거나 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옷을 조화롭게 만들었다. 옷을 반대로 입고, 찢고, 구멍을 내기도 했다. 이를 당시에 유행하던 것처럼 화려한 색감으로 선보였다면 지금 봐도 난해할 터. 그러나 검은색은 통일성에 더해 조화를 만들어주었다.

컬렉션에 관한 말을 아끼는 레이 가와쿠보, 그러나 그녀의 옷에는 일본의 전통적인 의복 양식이 숨어 있다. 기모노처럼 널찍한 품을 구현해 내고, 과도한 오버사이즈를 선보일 때도 잦았다.
현대 복식사에서 아방가르드의 어머니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 그녀가 가져온 히로시마 시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동양에서 온 여성이 기존 복식의 개념을 타파해버린 디자인을 선보이니 부정적인 평가를 했던 비평가들은 멀리 보지 못했다. ‘노숙자 패션’이라고 평가받던 그녀는 옳았다.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꼼 데 가르송을 바라보고 있다.

창의적인 디자인과 기존의 의복 개념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그녀의 꼼 데 가르송에는 여전히 배울 점이 넘쳐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