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 양아치 브랜드 아니야? 커버이미지
fashion

버버리, 양아치 브랜드 아니야?

이미지 쇄신 완료입니다

URL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공유해보세요!
버버리-트렌츠코트-버버리코트-라이센스-군복-이야기-버버리프로섬-역사

버버리는 시작부터 달랐다. 악명 높은 영국의 비 오는 날씨 때문에 고무로 된 무거운 레인코트를 입어야 했던 영국인들을 무거움으로부터 해방시켜줬다. 이는 버버리의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가 원래 사냥, 낚시 등에 적합한 옷들을 주로 취급하던 과거에서 비롯됐다.

지금은 명품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럭셔리 브랜드’로 통상되지만, 먼 옛날로 돌아가 보면 옆에 있는 다른 브랜드들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버버리-트렌츠코트-버버리코트-라이센스-군복-이야기-버버리프로섬-역사

꾸준히 갔더라면 아크테릭스 옆에 매장을 세워뒀을뻔한 브랜드 버버리. 이들에게는 유구한 전통과 흥망성쇠 이야기가 숨어있다.

개버딘이라고 들어봤나?

토마스 버버리는 농부들이 주로 입었던 가벼운 코트를 보다가 번뜩 떠올랐다. 그놈의 무거운 레인코트를 가볍지만 방수가 잘 되게 만들어야겠다고. 그렇게 그가 개발한 원단은 ‘개버딘’이다. 이 원단은 개발하는 데만 22년이 걸렸다. 단단한 짜임새로 튼튼하지만 가볍고 방수까지 잘 되는 천을 결국 완성해냈다.

버버리-트렌츠코트-버버리코트-라이센스-군복-이야기-버버리프로섬-역사

개버딘 원단과 버버리의 코트는 영국 군인들을 대표하는 의복이 되었다. 보어 전쟁 당시 영국군은 성능 좋은 버버리 코트를 대량으로 주문했고, 이는 ‘타이로켄 코트’로 불렸다. 1차 세계대전까지 잘 사용되어오다가 점점 ‘건 패치’, ‘벨트’ 등을 강화시키며 트렌치코트를 완성시켰다.

모드족을 대표하는 피시 테일 파카가 영국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보급되었는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남은 물자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버버리-트렌츠코트-버버리코트-라이센스-군복-이야기-버버리프로섬-역사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는 조금 달랐다. 전쟁 중에도 민간인들에게 높은 가격에 판매되기도 했다. 특히 상류층이 버버리를 주로 소비했다. 영국 왕조, 에드워드 7세는 “내 버버리 가져와(Bring my Burberry)”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고. 그도 그럴 것이 버버리 코트의 개버딘 원단이 지금으로 치면 ‘고어텍스’같은 느낌이었을 터.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는 디자인과 성능을 모두 인정받으며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버버리’는 트렌치코트의 대명사, 아니 고유명사가 되었다고.

님아, 라이선스의 강을 건너지 마오

버버리는 기능성으로 승부를 봤다. 하늘의 날씨를 견뎌야 하는 조종사나 탐험가, 군인들에게 버버리를 입히며 입지를 굳건히 했다. 그러나 영국의 경제 상황 악화로 잘나가던 버버리도 아픔을 맛봐야 했다. 죽기 일보 직전, 버버리는 브랜드 로고와 체크 패턴을 라이선스로 팔기 시작했다.

버버리-트렌츠코트-버버리코트-라이센스-군복-이야기-버버리프로섬-역사
일본이 라이센스를 획득해 전개했던 ‘버버리 블루라벨’

라이선스 남용은 브랜드가 제 발로 무덤에 묻히러 가는 꼴이라는 것을 그때까지는 몰랐다. 많은 브랜드들이 라이선스를 팔아 큰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버리는 몰락했다. 미국, 일본 등 각국에서 버버리의 로고와 체크무늬를 남용했다. 한국 교복에 버버리 체크 패턴은 너무나도 당연할 정도로 흔했다.

심지어 영국 축구 훌리건들, 양아치들의 최애 브랜드가 버버리였으니. 특색이 없어진 버버리는 그대로 몰락.

버버리-트렌츠코트-버버리코트-라이센스-군복-이야기-버버리프로섬-역사

할뻔 했으나, 저희가 왔습니다

전통은 여전했지만, 버버리는 나이 든 사람들만 입는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1998년, 망가진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라이선스를 회수하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베르토 메니체티’를 영입했다.

질 샌더의 선임 디자이너였던 그는 버버리를 패션 브랜드로 탈바꿈해 패션 위크에 나섰다. 사실 버버리는 그가 오기 전까지 프라다 같은 ‘패션’ 브랜드가 아니었다. 이는 성공적이었다.

버버리-트렌츠코트-버버리코트-라이센스-군복-이야기-버버리프로섬-역사

이에 더해 오아시스의 ‘리암 갤러거’ 같은 스타 밴드맨들이 90년대 버버리를 애정했다. 사업부의 리브랜딩에 서브컬처가 맞물리면서 버버리는 하이패션과 문화를 모두 잡기 시작했다.

버버리-트렌츠코트-버버리코트-라이센스-군복-이야기-버버리프로섬-역사

이후 2001년,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그의 후임으로 들어왔다. 그는 조금 더 고급화에 다가가기 위해 ‘버버리 프로섬’같은 라인을 따로 만들어 우아한 버버리를 만들어냈다. 엠마 왓슨 같은 유명 배우들에게 버버리를 입히며 버버리는 이제 럭셔리로 입지를 다졌다. 그의 뒤에는 CEO 안젤라 아렌츠가 있었다. 그녀는 성공적으로 버버리를 되살려내고 ‘애플’의 부사장이 되어 버버리를 떠났다.

버버리는 리카르도 티시, 다니엘 리 등 이제 다른 패션 하우스처럼 스타 패션 디자이너들의 무대가 되었다. 과거 훌리건, 차브족들이 버버리를 양아치 브랜드로 만들어 버렸지만 이는 지금에 와서 오히려 도움이 되는 현상도 보여주고 있다. 하이패션과 서브컬처 간의 경계가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의복의 역사적으로도, 문화의 역사적으로도 전통을 가지게 된 버버리.

버버리-트렌츠코트-버버리코트-라이센스-군복-이야기-버버리프로섬-역사

버버리는 방향성을 틀지 않았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혹은 노스페이스 옆에 매장을 세울 뻔했다. 그러나 영국의 서브컬처, 부를 과시하는 미국의 ‘여피족’, 왕까지 버버리를 사랑했다. 그들의 시작은 실용성이었지만, 버버리가 가진 고급스러움은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리브랜딩만으로 버버리의 럭셔리 화가 가능했을까?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