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2K’
이제는 진부한 단어처럼 들린다. 2020년 이후 문화 전반을 떠들썩하게 만든 Y2K 트렌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탓인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올드 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이후 ‘올드머니’, ‘드뮤어룩’, ‘보호 시크’, ‘인디슬리즈’ 등 다양한 키워드가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패션 시장을 군림하고 있다.

그중 이번 글에서 주목할 만한 트렌드 키워드는 ‘올드머니’, ‘드뮤어룩’이다. 하나 더하자면 ‘90년대 미니멀리즘’. 작년에 가장 뜨거웠던 트렌드가 아닐 수 없다.
‘디스퀘어드2(DSQUARED2)’, ‘디젤(DIESEL)’같은 Y2K 시절 흥했던 브랜드가 2022년까지 가장 하입을 받았다면 이후에는 깔끔한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하는 패션 스타일이 떠올랐다. 크게 언급도 없던 고급 브랜드 ‘로로피아나’, ‘브루넬로 쿠치넬리’ 등의 원단만으로도 유명한 브랜드들이 올드머니라는 키워드를 시작으로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프라다’, ‘더 로우’, ‘르메르’ 등의 브랜드가 ‘패션(Fashion)’으로서 더 적합한 비유일지도 모른다. 소재, 색감, 구조로 스타일을 구축하는 브랜드들이 유독 주목을 받는 게 단순히 브랜드가 가진 자본력 뿐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 남성 도메스틱 브랜드 역시 ‘렉토’, ‘유스’ 등 미니멀한 요소들을 가진 브랜드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과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헬무트 랭(Helmut Lang)’이라는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히피, 펑크 다 지나갔다
타이다이 염색, 보헤미안 하면 떠오르는 스타일을 가졌던 히피, 스키니 한 바지에 가죽 재킷, 비비안 웨스트우드로 대표되는 펑크(Punk), 마돈나 같은 팝스타, 건즈 앤 로지스 같은 글램 메탈 밴드들의 등장으로 80년대에 다시 부활한 글램(Glam)까지.

기성세대에 굴복하지 않던 청년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하위문화는 화려함의 연속이었다. 과격하고 반항적인 그들의 쿨한 모습은 대중을 설득시키기에도 충분했다. 멋있으니까.
화려한 이미지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계속될 순 없었다. 이들의 목소리가 점차 힘을 잃을 무렵, 세계 경제도 함께 휘청였다.
1990년 이라크 전쟁으로 석유 파동이 시작됐고, 세상은 더 이상 파티가 아닌 침체의 길로 들어섰다.
이제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았던 펑크처럼 과격한 반항은 지쳤다. 멋지게 꾸미기보다는 좋은 옷을 사서 오랫동안 입을 수 있거나 여러 번 입어도 티 안 나는 옷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니멀리즘이 떠올랐고 지금까지 ‘90s 미니멀’이라는 패션 키워드는 지금까지도 패션 러버들에게 예찬 받고 있다.
캘빈 클라인, 질 샌더, 프라다 등 최소한의 것들로 최대의 효용을 뿜어내는 디자이너들이 파죽지세였다.
그렇게 서브컬처의 유행이 끝나갈 무렵 수면 위로 떠오른 패션 디자이너 ‘헬무트 랭’. 그는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자신이 원하는 옷을 만들었다.

헬무트 랭이 누군데?
반항의 반항은 클래식이었다.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한 디자이너 ‘헬무트 랭’. 그에게는 패션계를 바꿔놓았다는 수식어가 그를 대표하는 미니멀리즘만큼 많이 따라다닌다.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패션쇼 무대 위는 글래머러스한 스타일로 가득했다. 칼 라거펠트처럼 당장 파티에서 나를 가장 돋보이게 만들어줄 그런 옷들 말이다. 에센셜하고 실용적인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다가오던 그때 헬무트 랭은 그 어색한 옷을 선보였다.



단색으로 구성된 컬러 팔레트를 극대화해줄 구조적인 실루엣, 언제든 입을 수 있는 실용성 등이 돋보이는 헬무트 랭의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한 점은 헬무트 랭만의 디테일 포인트였다. 정갈한 옷들 사이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헬무트 랭의 과감함은 지금도 거론되는 ‘페인팅 진’, ‘본디지 디테일‘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시대는 ‘캘빈 클라인’, ‘질 샌더’, ‘프라다’ 같은 브랜드와 함께 헬무트 랭을 맞이했다.

그는 마케팅 면에서도 혁신을 이뤄냈다. 뉴욕에 새 둥지를 튼 헬무트 랭은 택시에 헬무트 랭의 로고를 내걸었다. 고고한 디자이너 브랜드가 진행하는 마케팅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방식이었다.

이에 더해 온라인으로 런웨이를 공개하고, 자신의 컬렉션을 유럽보다 빠르게 내기 위해 인터넷으로 런웨이를 생중계했다. 이로써 뉴욕 패션 위크는 4대 패션 위크 중 가장 먼저 열리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제2의 헬무트 랭이 필요하다
매번 똑같은 바이럴 마케팅 방식, 셀럽 행사 초대 및 협찬, 하루에도 수십 개의 매체에서 같은 이미지가 올라온다. 디자인도 마찬가지. 언제나 그랬지만, 빠르게 접할 수 있는 만큼 빠르게 타 브랜드의 인기 제품과 비슷한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헬무트 랭은 디자인과 마케팅의 혁신을 이루어냈다. 2020년부터 이어져온 화려한 디자인에 우리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다시 찾아온 게 클래식한 트렌드다. 데자뷔처럼 이어지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시대상.
우리는 지금 헬무트 랭만큼의 조용한 혁신가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