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힙지로’라는 말이 더 익숙한 지역, 을지로. 보통 핫플레이스들은 지역명 혹은 랜드마크로 불린다. 예를 들어 ‘홍대’, ‘강남’, ‘성수’, ‘이태원’ 등이 있다.
그런데, 을지로는 ‘을지로’다. 도로의 이름으로 불리는 곳 대표적인 핫플레이스는 ‘종로’와 ‘충무로’가 있겠다. 종로는 조선시대 초부터 ‘종루’라는 큰 종이 있는 길로 ‘종길’, ‘종로’, ‘운종가’ 등으로 불렸다.
충무로는 일제강점기 당시 ‘혼마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 이에 역사적 정통성으로 일본의 잔재를 지우기 위해 임진왜란 때 왜군을 몰아낸 ‘이순신 장군’의 아호를 따왔다. 충정로는 을사늑약에 분노했던 민영환의 아호를 따왔다.
을지로도 해방 이후 개명된 도로명이다. 그러나 을지로는 달랐다. 일본에 저항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 아니다.
중국을 극복하자

조선 시대에는 ‘구리개’라고 불렸다. 다른 곳에 비해 개발이 덜 된 곳이라 외국인들이 다수 거주했다. 한일합방조약으로 대한 제국의 국권이 피탈당하자, 자연스레 이곳에는 일본인들이 많아졌다.
구리개는 ‘고가네마치’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고, ‘고가네마치도리’라는 도로도 개설됐다. 충무로의 혼마치처럼 이곳 역시 일본인들의 주요 도시였다.

그런데 왜 중국에 반하기 위한 지명을 지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해방 이후에는 중국인들이 차이나타운을 만들어 밀집해 살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화교촌이 형성되었던 곳이기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살수대첩에서 대승을 거두었던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을 따왔다.
인쇄소만 가득 있던 낡은 동네

2019년, 노가리 골목에서 가성비 있게 한잔하러 가던 동네가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레트로 붐’이었다. 골목에 펼쳐진 오래된 인쇄소들과 을지로 특유의 낡은 감성이 레트로에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분위기 좋은 카페와 술집이 더 생기기 시작했다. 원래 아는 사람들만 아는 숨은 명소였던 이 동네는 SNS, 뉴스 등에서 ‘요즘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젊은 바람이 다시 부는 이곳에는 “옛날에도 그랬는데”라는 어른들의 추억 담긴 말보다 조금 더 진하게, 청춘들이 바라보는 과거에 대한 시선이 섞여있다.

인터넷을 통해 시각적으로 경험한 어른들의 과거가 그들에게는 새로운 것이자 미래이기도 하다. 그래서 단순한 과거회귀라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을지로 어디 갈까?
을지로의 오래된 건물들은 뒤죽박죽인 계단 단차로 등산을 하는 기분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을지로의 저녁은 여전히 뜨겁다. 오르고 오르다 보면 원했던 분위기가 우리를 반기니까.
❶ 신도시

2015년부터 을지로의 문화 공간으로서 자리를 지켜온 펍 ‘신도시(@seendosi)’. 낡은 건물에 러프하게 이름을 한 글자씩 달아 놓은 간판. 그 아래로 들어서면 “여기가 그 힙하다는 곳이 맞을까” 의문이 드는 비범한 계단이 우리를 반긴다. 술과 분위기를 즐기러 온 이들이 가득한 이 공간은 단순한 펍이 아니다.
디제잉 파티 및 밴드 라이브 공연이 함께하는 곳이다. 밴드 ‘실리카겔’, ‘봉제인간’, 최근에는 ‘데카당’이 신도시에서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칵테일 한 잔과 최애들의 공연, 흥미로운 이벤트가 가득한 신도시의 인스타그램을 집중해 보자.
❷ 에이스포클럽

취하는 건 좋지만 술의 쓴맛은 싫은 당신을 위한 곳. 맛있게 취하고 싶다면 ‘에이스포클럽’으로 가면 된다. 달달한 술을 좋아하는 에디터는 에이스포클럽의 메뉴판을 보고 제일 단 맛이 강한 칵테일을 시켰다. 그리고 빠르게 취했다. 계단을 오르면 트럼프 카드 문양의 간판이 먼저 반긴다.
문에 그대로 남겨둔 60년 역사를 가진 ‘이화 다방’이 다시 한번 반긴다. 내부에서 바깥을 볼 수 있어 을지로 청춘들을 안주 삼아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곳. 데이트 코스로 분위기 내기 좋지만, 늦게 가면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으니 참고하시길.
❸ 친앤노즈

을지로3가역 10번 출구에서 1분. 위치 좋다. 그러나 지도 안 보면 그냥 지나칠 확률 70%. 작은 스탠딩 간판 하나 툭 놓여 있는 것을 정말 우연히 발견했다. 친구들과 “그냥 여기 가자”해서 들어간 와인바, 마음에 들었다.
하필 오랜만에 멋 좀 부려본다고 입은 슈트와 친앤노즈의 분위기가 그렇게 잘 맞아버릴 수가. 한눈에 반해버린 이곳에서 간단하게 와인 한 병과 담소를 나눴더니, 분위기에 취했다.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공간, 와인이 당기는 날엔 친앤노즈에 방문해 보자.
❹ 호텔 수선화

을지로를 대표하는 을지로맛 카페, ‘호텔 수선화’. 낡은 건물들로 가득 찬 을지로 골목을 지나 간판 없는 호텔 수선화의 입구를 찾았다면, 역시나 다음 관문인 계단이 있다. 음, 악명 높은 을지로 계단 ‘4층’에 있다.
레트로한 ‘감성’이 아니라 진짜 레트로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앤티크 한 가구들과 소품들, 그리고 콘크리트 벽. 호텔 수선화에 들렀다가 할머니 집으로 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낮에는 카페로, 밤에는 칵테일 및 와인이 기다리는 호텔 수선화에서 그 시절 운치를 경험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