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패션 역사에 가장 큰 획을 그은 디자이너가 누구냐 물어본다면, 모두들 입을 모아 한 명을 언급할 것이다. ‘레이 가와쿠보’.
그래서일까. 그녀가 이끄는 ‘꼼 데 가르송’은 학교인 듯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들을 대거 배출해냈다.
얼마나 많은지, 패션쇼를 진행하는 일본 디자이너 이름을 나열해 보면 꼼 데 가르송, 레이 가와쿠보와 관련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 것이다. 그리고 함께했던 요지 야마모토와 준야 와타나베까지 연관 짓는다면 사실 일본 디자이너 씬을 모두 섭렵할 수 있지 않을까.

배가 아닌 바늘로 낳은 꼼 데 가르송의 자식들, 누가 있을까.

그중에서도 맏형이 있다
준야 와타나베는 꼼 데 가르송이 낳은 대표적인 디자이너 중 맏형일 것이다. 그는 1984년 문화복장학원 졸업 후 바로 꼼 데 가르송의 패턴 메이커로 일했다. 이후 꼼 데 가르송 라인 중 입기 편한 아이템으로 갖춰진 트리콧(Tricot)라인을 맡았다.

업력이 쌓인 후 그는 동명의 레이블을 설립했다. 그런데 1년 후 꼼 데 가르송에서 자신의 이름이 붙은 꼼 데 가르송 라인 ‘준야 와타나베 꼼 데 가르송’을 론칭했고, 준야 와타나베는 레이 가와쿠보의 무한한 지원 아래 그의 디자인을 마음껏 선보였다.



레이 가와쿠보의 맏형 준야 와타나베도 후배들과 함께 나아갔다. 그를 스승으로 모신 이가 누구냐면.
이세이 미야케를 보고 꿈을 키웠고, 꼼 데 가르송에서 컸다.
TV 광고에서 본 이세이 미야케의 옷을 보고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운 ‘아베 치토세’. 훗날 브랜드 ‘사카이’를 만든 인물이다.

그녀도 꼼 데 가르송에서 패턴사로 입사했다. 이후 준야 와타나베와 함께 ‘준야 와타나베 꼼 데 가르송’을 이끈다. 당연 그녀가 가장 큰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준야 와타나베와 레이 가와쿠보.
이 가문은 가족애가 뜨겁다. 서로가 서로의 영감인 이들이었지만, 아베 치토세와 꼼 데 가르송은 8년 후 이별을 하게 된다.

결혼 후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바늘을 놓지 못하고 자신의 딸이 입을 니트를 만들었다. 이걸로 브랜드를 만든 것이 바로 ‘사카이(Sacai)’다. 사카이는 그녀의 결혼 전 성이라고.

레이 가와쿠보의 자식답게 해체주의, 아방가르드한 스타일 세계관을 구축해 나가고 있으며 나이키, 칼하트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후미토 간류의 더플코트가 그렇게 사고 싶었는데
준야 와타나베가 맏형 타이틀을 다는 데는 이유가 다 있다. 후미토 간류 역시 준야 와타나베의 패턴 메이커로 꼼 데 가르송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후미토 간류는 맏형처럼 자신의 이름을 단 꼼 데 가르송 라인을 이끌기도 했다고.

꼼 데 가르송을 떠난 후 2018년, 그는 브랜드 ‘후미토 간류’를 론칭했다. 과감한 패턴, 자연과의 조화를 고루 갖추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 특히 에디터의 학창 시절, 그렇게나 가지고 싶어 했던 19FW 시즌의 더플코트는 그의 대표적인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패턴사 출신답게 남들과는 다른 패턴의 해체주의 디자인을 여전히 멋지게 소화해 내고 있으며, 탄탄한 팬층을 가지고 있다.
꼼 데 가르송이 하트로 유명하잖아요
사카이를 이끄는 디자이너 아베 치토세. 사카이는 그녀가 결혼하기 전 본래 성에서 따온 브랜드명이었다. 남편이 바로 브랜드 ‘KOLOR’를 이끄는 디자이너 아베 준이치다. 이들은 흔하지 않고도 흔한 ‘사내 연애’로 결혼까지 골인했다. 바로 하트 모양으로 아주 유명한 ‘꼼 데 가르송’ 안에서 말이다. 한 집안에서 이런 경사(?)가 생기다니.

아베 준이치는 요지 야마모토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준야 와타나베와 함께 ‘꼼 데 가르송 준야 와타나베 맨’라인에서 패턴사로 꼼 데 가르송과의 인연을 함께했다. 이후 2004년 브랜드 컬러(KOLOR)를 론칭했다. 빠르게 성장하며 2008년부터 파리로 진출했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세계에서 인정받게 된다.

피티 우모 메인 게스트 디자이너로도 참여했다고.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철학을 가진 KOLOR는 해체주의 요소와 다양한 소재로 ‘장인 정신’을 보여주는 브랜드다.

옷을 입는 필드는 모두 야외다
얼마 전 유니클로가 일본의 프리미엄 아웃도어 브랜드 ‘화이트 마운티니어링’과의 세 번째 협업 컬렉션을 공개했다. 이들이 함께했던 2021년 협업 때는 제품 구매를 위해 문을 열기 전에 매장 앞에 줄을 서기도 했다고.

“옷을 입는 필드는 모두 야외다”
화이트 마운티니어링의 모토다. 브랜드 컨셉만큼이나 기본기와 실용성이 뛰어나고 디자인도 놓치지 않는다. 화이트 마운티니어링의 디렉터 ‘아이자와 요스케’는 준야 와타나베의 어시스턴트로 꼼 데 가르송과 함께했던 경력이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진짜 대부는 준야 와타나베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있게 해준, 일본 해체주의 히로시마 시크를 시작한 인물은 바로 레이 가와쿠보다. 일본에서 건너 온 레이 가와쿠보의 디자인에 반했던 사람들이 ‘마틴 마르지엘라’, 앤트워프 식스의 ‘앤 드뮐미스터’, ‘드리스 반 노튼’ 등 유명한 디자이너들이니까, 어찌 보면 전 세계 패션 씬에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중에서도 꼼 데 가르송이 직접 낳은 디자이너들을 알아봤다. 내가 레이 가와쿠보였다면, 능력 있고 잘나가는 우리 자식들이 그렇게나 자랑스러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