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슨스 디자인 스쿨과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정석대로 패션을 공부했던 디자이너, 베아테 칼손(Beate karlsson). 그녀의 졸업 작품은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상위 5개 컬렉션에 선정되어 이미 가능성을 증명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탄탄대로의 길을 걸어온 그녀에게 화려한 미래가 보장된 듯했다.

하지만 패션 업계의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었다. 그녀는 늘 원단과 바늘 대신 펜과 도장을 손에 쥐었고, 창작보다 회의와 수많은 타협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만 했다. 배워온 지식을 발휘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

디자인할 시간도, 설명할 시간도 없다
결국 칼손은 미완성된 컬렉션을 그대로 세상에 내놓는 방식을 택했다. 24S/S 아바바브(Avavav) 쇼의 제목은 ‘디자인할 시간도, 설명할 시간도 없다’였다. 잘못 적힌 로고가 붙은 포스트잇을 떼어내는 스태프의 퍼포먼스로 쇼가 시작됐다.

이어 런웨이에 선 모델들 역시 실수를 거듭했다.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는가 하면, 신발 한 짝 없이 등장하거나 휴지를 단 채 걷기도 했다. 런웨이 위의 작은 삐걱임까지 철저히 계산된 쇼의 일부였다.
“아바바브는 창의적인 놀이 공간이다. 늘 지적인 방법으로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한다.”

Filthy Rich, 추잡한 부자
그렇다면 그녀의 데뷔 쇼는 어땠을까. ‘명품은 쓰레기’라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내세운 쇼의 제목은 ‘추잡한 부자’였다. 해당 컬렉션의 의상에는 쇼의 제목인 ‘Filthy Rich’를 비롯해, 골드디깅 사업이나 달러 기호 등의 문구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럭셔리 산업과 과시가 주를 이루는 소비문화를 향한 통렬한 풍자였다.
“불황의 시대에, 과시와 도피가 화두가 되고 있다.”
동시에 베아테 칼손은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부자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과 과시욕은 자신에게도 분명히 존재하며,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감정이라는 것이다.
이날 런웨이에서는 모델들이 잇따라 넘어졌다. 화려하게 치장을 한 모델들이 체면을 잃는 순간을 그대로 드러내며, 욕망의 민낯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가면을 쓰기는 쉽지만, 가면을 쓰다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내 무대에 쓰레기를 던져라
24F/W 밀라노 패션위크에서는 한층 과감한 실험을 선보였다. 쇼가 시작되기 전, 관객들은 비닐장갑과 쓰레기가 담긴 바구니를 건네받았다. 그 안에는 종이컵과 캔, 바나나 껍질 등의 오물이 담겨 있었다.

쇼가 시작되자 관객들은 런웨이 위의 모델들에게 오물을 투척했다. 동시에 스크린에는 브랜드를 향한 악플들이 실시간으로 띄워졌다. 모델들은 온갖 쓰레기를 뒤집어쓴 채 걸었고, 관객들은 가해자이자 동시에 쇼의 일부가 되었다. 온라인 공간에서 난무하는 무분별한 비판과 조롱을 그대로 시각화한 셈. 끝으로, 쇼를 마치며 인사하러 나온 베아테 칼손에게 누군가 얼굴에 케이크를 투척하고 달아나며 마무리되었다. 스스로 희생양이 되며 씁쓸하게 무대의 막을 내린 것이었다.

패션을 위한 바이럴인가, 바이럴을 위한 패션인가
이러한 비판은 브랜드가 새로운 쇼를 공개할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바바브의 쇼는 공개될 때마다 수차례 틱톡에서 바이럴되었다.
“누군가 비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SNS를 손에 쥐고 태어났다는 베아테 칼손. 그녀는 여전히 ‘베아테 칼손’만의 방식으로 브랜드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이제 패션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런웨이를 넘어 온라인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밈처럼 소비되는 그 과정 역시 이 시대의 패션 업계에서 살아남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