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패션쇼의 본질은 늘 ‘런웨이’에 있었다.
브랜드들은 런웨이를 통해 컬렉션을 발표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관객과 모델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정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패션쇼를 ‘관람’하지 않는다. 대신 언제 어디서든 브랜드의 이야기를 향유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구찌의 컬렉션 <더 타이거(The Tiger)>가 있다.
구찌는 새로운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의 데뷔 컬렉션을 단편 영화로 선보이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변화의 흐름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것.

“완벽해 보이고, 완벽한 옷을 입어야 해요”
<더 타이거>는 기존 런웨이의 형식을 완전히 해체한 실험적 프로젝트다. 오스카상을 수상한 감독 ‘스파이크 존즈’와 ‘할리나 레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 내내 뎀나의 새로운 컬렉션은 무대의 중심에 서 있다.
주인공인 데미 무어는 구찌 인터내셔널의 수장 ‘바바라 구찌’를 연기했다. 영화는 한 상류층 가문의 생일 파티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표면적으로는 고급스럽고 우아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속의 갈등이 드러난다.

데미 무어는 특히 눈길을 끄는 구찌의 ‘빨간 코트’를 입고 등장한다. 구찌 버튼과 커다란 브로치가 달린. 밤이 깊어가며 저녁 식사에 초대된 손님들은 다양한 룩을 선보인다.
타조 깃털로 장식된 ‘핑크 시스루 가운’이 물 속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꽤나 압도적이다.

영화 중반부터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고, 공간은 왜곡된다. 인물들은 하나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입고 있는 옷은 그들의 정체성과 감정 상태를 시각적으로 대변한다.
이는 곧 구찌가 제시하는 ‘새로운 런웨이’의 모습이다. 정형화된 무대 위를 걷는 모델 대신 일상의 다양한 공간에서 캐릭터들은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며 컬렉션을 입는다.

런웨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화한 것이다. 직선의 무대가 아닌 현실이라는 무형의 무대 위에 존재할 뿐.

“호랑이와 같은 공간에 있다면 맞서 싸울 것인가, 삼켜지게 내버려 둘 것인가?”
뎀나의 디자인은 ‘아이러니와 모순’이 핵심이다. 아름다움과 추함, 고급스러움과 허술함을 동시에 담아내며 전통적인 럭셔리의 개념에 의문을 던진다.

<더 타이거>를 통해 그는 완벽해 보이는 외관 속에서 균열과 빈틈을 찾아내고, 그 안에 유머와 비판을 녹여냈다. 엘리트 문화를 비웃으면서도 사실은 그들을 ‘옷 입히는’ 독특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뎀나 바잘리아, 그의 작품은 새로운 시각으로 패션과 사회를 바라보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