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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잘 입는 언니들, 세일러 문

비법은 패션 하우스의 런웨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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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은 세대를 넘어, 누군가의 영감으로 되살아난다. 샤넬, 크리스챤 디올과 같이 쿠튀르의 정수를 남긴 디자이너들의 유산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또렷이 빛나며 새로운 창작자들에게 다시 호흡을 불어넣는다. 타케우치 나오코 작가의 <세일러 문> 역시 그 계보 위에 서있다. <세일러 문>은 마법소녀물이라는 장르에 패션 하우스의 미학을 접목시켜 스타일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세일러 문> 속 등장인물들의 일상복 역시 주목할 만하다. 사복을 입은 이들에게는 남다른 감각이 스며 있는데. 무심하게 툭 걸친 니트와 스커트, 컬러의 조합과 레이어드에는 이미 패션 하우스의 언어가 녹아 있었다. 옷 잘 입는 언니들의 비밀은 사실 먼 데 있지 않았다. 

크리스챤 디올

먼저, 프린세스 세레니티의 순백 드레스는 단순한 왕실 의상이 아니었다. 그 원형은 바로 1992년 크리스챤 디올의 팔라디오 드레스. 당시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지안프랑코 페레가 제작한 쿠튀르 의상으로, 고대 그리스 건축 양식을 빌려 탄생했다.

드레스의 나선형 소매와 플리츠 실루엣은 이오니아식 기둥을 연상케 하는데. 팔라디오라는 이름은 르네상스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의 대표작 ‘빌라 알메리코 카프라’에서는 6개의 이오니아식 기둥이 사용된 바 있다. 우아함과 세련미를 동시에 갖춘 이 기둥 형상은 패션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곡선과 직선의 조화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세레니티는 왜 이 드레스를 선택했는가. <세일러 문>의 스토리 구조가 그리스 신화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그 이유는 명확해진다. 그녀의 이마에 새겨진 초승달 역시 달의 여신 셀레네(Selene)를 직접적으로 상징하며, 드레스의 고전적인 미학은 그녀의 신화적 혈통과 완벽히 맞닿아 있다.

뮈글러

세레니티가 디올의 빛을 입었다면, 악당 코안과 퀸 베릴, 그리고 멸망의 전사 세일러 새턴은 뮈글러의 어둠을 걸쳤다. 이들은 빛의 반대편에 서서 또 다른 형태로 매력을 드러냈다. 티에리 뮈글러는 조형적인 실루엣으로 육체의 곡선과 미를 강조한 디자이너였다.

검은 깃털로 이루어진 튜튜 스커트와 시스루 바디수트. 코안이 걸친 깃털은 더 이상 부드러운 장식이 아니라 어둠을 머금은, 파괴와 유혹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게 고딕적인 무드와 관능적 이미지가 완성됐다. <세일러 문> 속 악당들이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멸망의 전사, 세일러 새턴 또한 티에리 뮈글러를 입었다. 이는 92F/W 쇼에서 크리스틴 맥메너미가 착용한 쿠튀르 의상이었다.

크리스찬 라크루아

또 다른 블랙 문 일가 중 한 명인 카라베라스가 착용한 금색 코르셋은 크리스찬 라크루아가 1992년도 선보인 쿠튀르 드레스다. 금속 소재로 제작된 코르셋과 화려한 리본 장식이 특징. 반짝이는 질감과 코르셋의 형태가 캐릭터의 카리스마, 그리고 위협적인 매력을 동시에 강조했다.

샤넬

세일러 플루토가 입은 블랙 드레스는 샤넬의 92S/S 컬렉션을 오마주한 의상이다. 몸에 꼭 맞게 떨어지는 실루엣 위로 금색 체인과 브로치가 포인트로 더해져 세련된 무드를 완성했다. 그녀의 차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한 것. 

흥미로운 점은, 페넬로페 크루즈와 릴리 로즈 뎁 등이 실제로 같은 드레스를 착용했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와 현실 속 셀럽들의 패션을 비교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될 터.

90년대에 탄생한 이 작품 또한 아직까지 유수의 브랜드와 협업하며 누군가의 영감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이패션과 오트 쿠튀르에 대한 타케우치 나오코의 각별한 애정, 그리고 패션을 통해 만화 속 세계를 구축하려 했던 창작자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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