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을 귀로만 듣는 예술이라고 말하는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현시대에 음악은 화면과 함께 완성된다. 뮤직비디오는 이제 단순히 음악을 홍보하기 위한 영상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가장 압축적이고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는 예술 장르다.
일부 아티스트들은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영화감독들과 손을 잡고, 자신의 예술 세계를 완성하는 하나의 매체로 뮤직비디오를 활용했다. 음악과 영화, 서로의 감각을 빌려 완성된 예술작품 같은 5편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한다.
➊ The Killers – Bones
2004년 데뷔한 미국 라스베이거스 출신의 ‘더 킬러스’. 그들의 두 번째 음반 [Sam’s town] 8번 트랙 ‘Bones’는 서로의 뼈를 느끼는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다. ‘데본 아오키’가 출연한 뮤직비디오는 전형적인 ‘팀 버튼’ 스타일이지만, 동시에 더 킬러스 특유의 사운드와도 완벽하게 어울린다. 음악과 영화, 두 세계가 서로에게 흡수된 결과물이다.
➋ 이정현 – V
1999년, ‘이정현’은 그 어떤 가수보다 파격적이었다. ‘와’, ‘바꿔’는 당시로선 충격적이던 퍼포먼스와 컨셉으로 테크노 열풍을 넘어, 테크노 광풍을 만들었다. 그런 그녀가 2013년 ‘박찬욱’ 감독과 함께 또 한 번 파격적인 컨셉으로 돌아왔다. 좀비 신부, 으스스한 저택, 광기 어린 사랑. 2011년, 이정현은 박찬욱의 영화 <파란만장>에 출연료 없이 출연했는데, 박찬욱이 이에 보답하여 노 개런티로 ‘V’ 뮤직비디오를 찍었다는 훈훈한 비하인드 스토리.
➌ Michael Jackson – Bad
‘마이클 잭슨’은 뮤직비디오라는 장르를 예술로 끌어올린 최초의 아티스트였다. [Thriller] 이후, 그는 음악과 영상이 하나로 어우러져야 완성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Thriller]보다 무려 1년 9개월을 더 투자한 [BAD]는 그 철학이 정점에 달한 앨범이다. 마틴 스콜세이지가 연출을 맡은 ‘BAD’의 뮤직비디오는 무려 18분 분량으로, 마이클 잭슨의 안무와 트랙킹, 줌인을 오가는 스콜세지의 역동적인 연출력이 만나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탄생했다.
➍ Beastie Boys – Sabotage
1981년 뉴욕에서 결성된 ‘비스티 보이즈’는 최초의 백인 힙합 밴드였다. 그들은 헤비메탈과 펑크를 활용한 혁신적인 음악을 선보이며 90년대 랩 메탈의 유행을 예언했다. 1994년 발매한 정규 4집 [Ill Communication]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명반으로,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1위에 등극했다. 뮤직비디오계의 이단아 ‘스파이크 존즈’가 이들의 뮤직비디오 디렉팅을 맡는 건 운명처럼 자연스러웠다. 70년대 미국 형사물을 패러디한 ‘Sabotage’ 뮤직비디오는 마치 ‘진지한 장난’처럼 보인다.
➎ Björk – Bachelorette
아이슬란드 출신의 ‘비요크’는 원래 얼터너티브 록 밴드 ‘슈가큐브스’의 보컬이었다. 1993년 솔로로 활동을 시작한 비요크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음악을 시도했고, 독특한 일렉트로닉 팝 사운드로 대중을 매료시켰다. 1997년 발매한 3집 [Homogenic]은 그녀의 새로운 시도가 정점에 달한 앨범이다.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수록곡 ‘Bachelorette’의 뮤직비디오는 영화보다는 연극에 가깝다. 예측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에너지가 충돌해 반짝이는 순간이다.
영화감독이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시대부터 뮤직비디오는 이미 하나의 예술작품이었고, 어떤 때는 영화보다 더 직접적이고 더 순수했다. 3분짜리 영상이 2시간짜리 영화보다 더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걸, 이 뮤직비디오들이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