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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마, 가장 화려한 사기꾼

모두가 그녀에게 홀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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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 ‘애나 델비’를 검색하면 나란히 뜨는 단어는 다름 아닌 ‘사기꾼’. 수많은 사기 행각으로 여러 사람들을 홀린 그녀는 이제 패션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게다가 애나 델비의 이야기는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로 제작되기까지 했으니. 사기꾼 애나 델비,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독일 출신 상속녀이자 억만장자라던 그녀. 하지만 시작은 구 소련에서 태어난, 지극히 평범한 독일의 이민자 가정 출신 ‘애나 소로킨’이었다.

소로킨은 어렸을 적부터 늘 보그 잡지를 곁에 두며 패션과 예술을 동경해왔다. 그리고 2011년 학교를 졸업한 후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 진학하기 위해 런던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학업을 포기한 뒤 이번에는 파리로 떠나 퍼플 매거진에 인턴으로 들어간다. 그때부터 그녀는 애나 소로킨이 아닌 ‘애나 델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3년 뉴욕 패션위크에 참석한 애나 델비는 뉴욕에 반해 이곳으로 거처를 옮길 결심을 한다. 파리보다는 뉴욕에서 인맥을 쌓기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렇게 그녀는 퍼플 매거진 뉴욕 지사로 옮겼고, 애나 델비의 만행도 함께 시작되었다.

뉴욕커 애나 델비는 이제 잡지사 인턴이 아닌 ‘독일 출신의 상속녀’가 되었다. 애나 델비는 패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가. 그녀의 패션과 태도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사기 쉬웠다. 게다가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많았던 그녀이기에 애나 델비를 믿을만한 근거는 충분했다.

그녀와 여전히 연락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네프 데이비스’라는 인물은 애나 델비가 방문한 호텔 데스크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릭 오웬스를 걸치고 셀린느 안경을 쓴 채 유럽식 영어를 구사하는 애나 델비에게 홀릴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돈이 어디서 나오든, 제 알 바는 아니잖아요?”

DJ 엘 디가 말하는 애나 델비

뉴욕에서 DJ로 활동했던 엘 디(Elle Dee)가 애나를 처음 만난 건 2014년이었다.

저는 호텔에서 디제잉을 하기로 해서 그곳에 방문했어요. 호텔 룸에 투숙하던 중 파티 관계자가 갑자기 방문을 두드렸죠. 그리고 그 뒤에 애나 델비가 있었어요. 관계자는 애나가 저와 함께 방을 써도 되겠냐고 물었어요. 걔 표정이 시큰둥해서 별로 내키지 않았죠. 호텔 룸에 같이 있던 제 친구가 애나 드레스를 칭찬했거든요. 그제야 입을 열었어요. “발렌시아가.”라고.

결국 저희는 애나를 내쫓았어요. 그리고 걔가 남긴 한 마디 ‘발렌시아가’는 저희 사이에서 유행어가 됐죠. 그런데 좀 지나고 보니까,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찾아가서 잠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했는데 걔가 거절했어요.

그리고 다음 날 주차장에 갔더니, 애나가 차 안에서 잠들어 있는 거예요. 너무 놀랐는데 한편으로는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렇게 돈 많아 보이는 애가 왜 방을 구하지 않았지?

이후에는 제가 DJ로 참석하는 파티마다 애나가 있었어요. 그리고 사진작가가 나타나면 늘 제 곁으로 와서 사진을 남겼어요. 그때 생각했죠. 아, 얘는 자기 이름을 알리고 싶나 보다.

어느 날 갑자기 애나가 번호를 물었어요. 그리고 저녁 모임 파티에 저를 초대했죠. 근데 파티에 갔더니, 너무 어색한 거예요. 다들 처음 본 사이인 마냥. 애나는 계속 웨스트사이드에 있는 월세 1만 2천 달러짜리 집을 알아보고 있다는 걸 강조했어요. 그냥 집에 가려고 했는데, 애나가 저에게 지갑을 두고 왔으니 술값을 대신 지불해달라고 했어요.

한참 뒤에 저는 파리 패션위크에 참석했어요. 갑자기 애나에게 자기도 파리에 있다면서 연락이 왔어요. 그리고 또 파티에 초대했죠. 파티에 갔더니 또 다들 어색하게만 앉아 있는 거예요. 다들 자기 휴대폰만 보고 있는데 짜증 나서 결국 빨리 집에 왔죠.

그리고 다음 날 애나가 울면서 전화를 걸었어요. 이번에는 신용카드가 정지되었다고 35,000유로를 빌려달라고 했죠. 그만한 돈이 없다고 했더니, 바로 울음을 멈추고 알겠다며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애나 델비 재단을 설립하겠어요

이후 애나 델비는 뉴욕의 상류층 인사들과 어울리며 사교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는 ‘애나 델비 재단’을 설립하겠다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녔다. 그녀가 계획한 건 아트 스튜디오 및 예술 센터였는데, 사교계에서 알게 된 이들에게 투자를 받고자 했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2,200만 달러가 필요했던 애나는 여러 은행에 위조문서를 전달했고, 일부를 대출받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은행 담당자들의 의심을 받은 애나는 결국 대출 신청을 철회했다. 그러나 일부 금액은 이미 대출이 승인된 상태였고, 애나는 그 돈으로 고가의 의류와 가구를 구매하고 개인 트레이너까지 고용했다.

11 하워드 호텔이 말하는 애나 델비

‘애나 델비는 후한 팁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

11 하워드 호텔은 소호에 위치한 5성급 호텔이에요. 그리고 이는 호텔 직원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던 소문이죠. 애나는 늘 매니저가 아닌 직원들과 가까이 지냈어요.

애나 델비가 우리 호텔에 체크인하자마자 그녀에게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어요. 무례하긴 했는데, 팁을 100달러씩 계속 줬거든요. 그런데 신용카드를 등록하지 않고 나중에 지불하겠다고 했어요. 계속해서 직원들한테 팁만 뿌렸던 거죠. 호텔에 돈을 지불하든 말든, 저희는 팁만 받으면 되잖아요. 누가 애나한테 밉보이고 싶겠어요?

결국 몇 달 후에 이 사실이 경영진들한테 알려졌어요. 3만 달러의 청구서가 그녀한테 날아갔죠. 그랬더니 애나는 3만 달러를 호텔에 송금했어요. 근데 알고 보니까, 사기 수표를 은행에 입금했던 거죠.

레이첼 윌리엄스가 말하는 애나 델비

저는 레스토랑에서 애나를 처음 만났어요. 인스타에서 많이 봤던 ‘그 애나 델비’를 실제로 마주친 거죠. 그날 저는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어요. 그곳에서 애나는 자신이 계획 중인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죠. 이후로는 주말마다 애나를 만났어요.

어느 날 애나가 모로코의 마라케시로 여행을 가자고 했어요. 저는 그럴 만한 돈이 없다고 했더니 애나는 당연히 자기가 모든 여행비를 부담하겠다고 했죠.

아, 둘만 간 게 아니라 레이첼 개인 트레이너와 촬영 기사까지 함께 했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남기고 싶다고 했죠. 저희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VIP 서비스를 받으면서 이동했어요. 애나는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5성급 럭셔리 리조트를 예매했어요. 1박에 7천 달러짜리 숙소였죠.

그렇게 저희는 애나 덕분에 초호화 여행을 즐겼어요. 옷을 구매하러 갔는데 애나의 카드는 결제가 거부됐어요. 해외 결제가 막혀있다고 대신 결제해달라고 저에게 부탁했죠. 돈은 여행이 끝나면 보내주겠다고 했고요. 그리고 저녁 식사까지 제 카드로 결제했어요.

며칠 뒤에 호텔 직원이 저희에게 찾아왔어요.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애나는 ‘은행에 전화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했죠. 또 다음날에는 매니저가 찾아와서 애나를 데려갔는데, 숙박비가 결제되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 문제 때문에 한 직원이 저희 눈앞에서 해고당했어요. 끔찍했죠.

애나가 해결을 못해서 일단 결제 좀 해달라고 계속 저를 설득했어요. 62,000달러? 그러니까 8,000만 원 정도인데, 제 연봉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어요. 근데 어쩌겠어요. 걔 씀씀이를 봐왔으니 불안할 것도 없었죠. 결국 제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돈을 지불했어요.

제가 먼저 뉴욕에 돌아왔는데 돈을 돌려받지 못했어요. 얘는 돈이 많아서 6만 달러가 얼마나 큰 금액인지 모르나? 국제 송금이라서 오래 걸리나 보다, 생각했죠. 하지만 끝까지 돈을 모두 돌려주지 않았고 결국 고소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애나 델비는 그냥 사기꾼이었던 거죠.

이 사건들 외에도 애나는 호텔과 은행, 개인을 상대로 수많은 사기 행각을 벌였다. 결국 사기 혐의로 최소 4년의 징역형, 2만 4천 달러의 벌금, 19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명령을 받은 애나 델비. 법정에 선 그녀는 스타일리스트까지 고용했다. 그렇게 애나는 미우미우 원피스와 셀린느 안경을 착용한 채 법원에 등장했고, 이 또한 화두에 올랐다. 이후에는 죄수복을 입기 싫다고 거부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애나 델비의 이야기는 제시카 프레슬러가 뉴욕 매거진에 글을 기고하며 알려졌다. 이는 그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6위를 차지하기도. 심지어 넷플릭스에서는 애나에게 32만 달러의 판권을 지불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시리즈 <애나 만들기>를 제작했다. 이는 그녀가 지불해야 하는 벌금과 배상금보다도 큰 금액이었다.

뉴욕주법에는 범죄자가 본인의 경험담을 수익화할 수 없다는 ‘샘의 아들 법’이 존재하는데, 이는 애나 델비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이후 애나 델비는 CNN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를 진행했던 인터뷰어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자신이 저질렀던 행동들이 범죄가 아닌 ‘자신이 극복해야 할 과거’로 포장해서 이야기했다고.

“애나 델비는 인생의 제2막의 만들어가는 여자처럼 보였다.”

애나 델비가 말하는 애나 델비

저는 미안하지 않아요. 제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사과하면, 모든 사람들과 저 스스로에게 거짓말하는 게 되는 거잖아요? 그저 제가 일을 처리했던 방식들을 후회할 뿐이죠. 저는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행동할 거예요. 저는 트럼프에게 서한을 보내서 모범수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죠. 저는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애나 델비는 여전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그녀는 전자발찌 착용이라는 조건 하에, 가택 연금 중인 상태. 거주지 70마일 이내 및 뉴욕시 다섯 개 자치구 내에서만 자유가 허용되었다.

늘 패션을 고집하던 애나 델비는 결국 패션 홍보 대행사 ‘아웃로우’를 설립했다. 그리고 2023년, 패션 디자이너 샤오 양의 브랜드, 샤오(SHAO)의 뉴욕 패션위크 데뷔 컬렉션 쇼를 함께했다. 해당 쇼는 다름 아닌 가택 연금 중인 애나 델비의 아파트 옥상에서 공개되었다.

지난해에는 ABC의 티비 쇼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해 논란이 빗발치기도. 전자발찌를 착용한 채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에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지금도 그녀의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발목에는 여전히 전자발찌를 찬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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