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을 위한 옷’을 모토로 미니멀리즘 세상에 획을 그은 패션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 에디 슬리먼이 그녀의 뒤를 이어 받자, ‘올드 셀린느’ 신드롬을 일어나기도 하는 등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그녀가 세상에 내놓았던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럭셔리’라는 개념은 실로 중요하다.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의상들이 찬사를 받는다. 그럼에도 회사 출근할 때, 가볍게 놀러 갈 때 입기에 이 옷은 좀 ‘과하다’라는 생각부터 떠올리게 된다. 피비 파일로의 의상은 확실하게 고급스러우면서도, ‘꾸몄다’를 과시하지 않았다. 이는 자연스레 매출로 이어지고, 피비 파일로와 함께한 이후 셀린느는 엄청난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피비 파일로를 숭배하는 이들이 많은 만큼, 그녀가 키워낸 스타 패션 디자이너들도 많다.
리 브랜딩의 마술사, 다니엘 리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이후이자 셀린느가 고공행진을 시작했던 2012년, 다니엘 리는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피비 파일로와 함께 일하며, 셀린느의 레디 투 웨어(RTW) 디렉터까지 올랐던 그는 2018년 ‘보테가 베네타’로 이적했다.
마침 피비 파일로가 셀린느를 떠난 시기와 겹치면서, 올드 셀린느의 팬들은 다니엘 리의 보테가 베네타로 눈을 돌렸다.
셀린느에서 배운 자, 셀린느의 피를 물려받아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매력적인 아이템들로 올드 셀린 팬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보테가 베네타에서 브랜드의 유산을 살리면서, ‘카세트 백’, ‘조디 백’ 등 현재 보테가 베네타 하면 떠오르는 아이템들을 배출해냈다. 초록색을 대표 컬러로 선정하며 보테가 베네타의 상징도 재구성해나갔다.

2021년, 돌연 퇴사 약 2년 뒤 버버리에서 역시나 브랜드 전통성은 유지하되, 새로운 로고, 폰트, 아이템 등으로 브랜드를 되살렸다. 올드한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합류로 다시금 트렌디한 브랜드로 부활했다.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

더 형용할 필요 없다. 최고의 패션 하우스 중 하나인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패션 디자이너 ‘마티유 블라지’. 그 역시 2014년 피비 파일로와 함께 셀린느에서 시니어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이전에는 다니엘 리의 뒤를 이어 보테가 베네타의 CD를 역임한 바 있다. 보테가 베네타에서의 그 역시 가끔 셀린느 때의 디자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올드 셀린느의 디자인이 얼마나 영향력이 컸는지 증명하는 셈.

찬란했던 샤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샤넬 전통을 대표하는 ‘트위드’를 지키면서, 장인 정신은 유지했다.
26SS 가장 기대되는 컬렉션으로 꼽혔던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은 젠더리스 스타일이 돋보이는 연출에 트위드재킷의 재해석으로 패션 피플들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한국인 최초 LVMH, 황록
한국인 최초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 특별상까지 수상했던 패션 디자이너 황록, 그 역시 피비 파일로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 패션 스쿨 졸업 후 피비 파일로에게 간택당했다. 피비 파일로가 셀린느에서 팀을 꾸리던 2010년, 일원으로 합류해 레디 투 웨어 디자이너로 함께했다.

이후 끌로에, 루이비통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그의 커리어를 수식하는 단어들이 늘어났지만, 직접 설립한 디자이너 브랜드 ‘로크(ROKH)’를 빼놓을 수는 없다.
실루엣 변형이 가능한 스트랩, 지퍼 등을 활용해 착용자도 옷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로크의 특징. 대게 이를 해체주의적 디자인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해체가 아닌 재건이라고 언급했다.
황록 디자이너만의 유연한 디자인, 부드러운 테일러링에는 입기 편한 옷을 중시했던 피비 파일로의 향기가 느껴진다.
2024년, 한국인 최초로 H&M과 협업한 디자이너로도 이름을 알렸다.
올드 셀린느가 돌아왔다?, 마이클 라이더
에디 슬리먼이 셀린느를 떠났다. 그의 뒤를 이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다름 아닌 피비 파일로와 셀린느에서 10년 동안 함께 일했던 마이클 라이더였다. 2008년부터 피비 파일로가 떠나는 2018년까지 레디 투 웨어 디자인 디렉터로서 올드 셀린느의 주역 중 한 명이라고.
마이클 라이더는 폴로 랄프 로렌 여성복 컬렉션을 이끌었다. 셀린느로 복귀하자마자 자신만의 세련된 셀린느 감성과 상업적인 폴로 랄프 로렌의 감성을 잘 버무려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피비 파일로의 ‘팬텀 백(Phantom Bag)’이 마이클 라이더의 손에서 재탄생했다. 다리에 딱 붙는 스키니 실루엣과 프레피 스타일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는 7년간 셀린느를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끌었던 에디 슬리먼을 계승하면서, 스승인 피비 파일로의 유산도 지키는 면모를 보인 셈이다.
새로운 셀린느의 시작. 패션 팬들은 마이클 라이더의 셀린느를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
메종 키츠네를 이끌었던 한국계 디자이너, 유니 안

피비 파일로의 절친한 친구 스텔라 매카트니, 끌로에, 셀린느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활동했던 한국계 디자이너 유니 안. 그녀 역시 피비 파일로의 피를 물려받았다.
이후 2018년 12월 메종 키츠네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본래 음악과 패션의 결합을 상징했던 메종 키츠네를 하이패션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던 장본인이다. 약 2년, 짧은 기간 메종 키츠네와 함께했지만 피비 파일로 색채가 담긴 메종 키츠네의 새로운 모습을 이끌어냈다.
빠질 수 없는, 피터 도

피터 도. 그는 피비 파일로의 적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뉴욕으로 향한 그의 컬렉션에는 항상 ‘뉴 피비 파일로’, ‘넥스트 피비 파일로’라는 키워드가 함께했을 정도였다. 타임리스하고도 유려한 실루엣, 깔끔하지만 미니멀리즘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사용할 수는 없는 피터 도만의 감각이 전설의 후계자로 불리는 이유였다.
2023년 헬무트 랭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피터 도는 그의 특기인 테일러링 솜씨를 마음껏 뽐냈다. 깔끔하면서도 반대로 입은 듯한 셔츠, 여성스러운 남성 자켓 등 절대 따분하지 않았다. 그의 디자인은 패션위크에 있는 이들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헬무트 랭에서는 약 1년 반 동안, 짧게 활동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피터 도는 피터 도일 때 가장 빛난다. 넥스트 피비 파일로 그 이상의 피터 도, 온리 원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미래가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