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에 태그된 위치는 코펜하겐의 어느 공원. 궁금했다.
패션으로 유명한 건 알겠는데, 과연 이 도시의 음악은 어떨까?

유튜브를 켜 코펜하겐의 뮤지션들을 디깅했다.
그들의 음악은 대체로 우리가 떠올리는 북유럽 특유의 포크나 일렉트로닉과는 조금 달랐다. 몽환적이고, 해체적이며,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불필요한 소리는 최대한 배제한 것. 그리 많지 않은 음악적 요소들로 강한 분위기를 풍겨냈다. 여백과 공간감이 느껴진다.
글로는 잘 와닿지 않는다면, 에디터가 소개하는 음악들을 직접 들어보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코펜하겐’이라는 도시를 표현하고 있으니.
Smerz – You got time and I got money
사진의 주인공이다. 노르웨이 출신이지만,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여성 듀오다. 무표정하게 속삭이는 보컬이 어딘가 불안정하지만 중독적이다.
찢긴 듯한 드럼 루프가 특징이며,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감각이 뒤틀린 듯 혼란스럽다.
Erika De Casier – Delusional
“내가 망상에 빠졌다고 해도 괜찮아(You can call me delusional)”
곡에서 에리카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분하고 부드럽다. 하지만 가사에서 알 수 있듯 내면은 복잡한 감정으로 흔들리고 있다. 상상이 허상임을 본인도 알고 있고, 그걸 받아들여야 하니 말이다.
곡의 뿌리는 R&B지만, 편곡은 90년대 UK 트립합이나 얼터너티브 팝에서 영향을 받았다. 여러 장르를 가져와 그녀만의 스타일로 완성시켰다.
Dean Blunt & Elias Rønnefelt – 5
앞선 곡들보다 조금 더 실험적인 결이다. 제목인 ‘5’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청자에게 해석을 맡겼다. 정확한 앨범 정보는 없어서 비공식 또는 한정 릴리즈였을 가능성이 크다.
대화처럼 주고받는 보컬 나레이션과 독백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필드 레코딩에서 흘러나온 잡음과 침묵이 섞인 사운드는 불안한 공간에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ML Buch – Flame Shards Goo
“조니 미첼의 <아멜리아>를 3D 프린터로 재생산한 듯한 사운드다” – 크랙 매거진 비평
이 곡은 시골에서 차를 몰던 중, 그녀의 푸조 차량 안에서 녹음됐다. 덕분에 다양한 공간을 오가며 중첩된 소리들이 곡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기타 소리를 차 안의 스피커로 재생하고, 다시 녹음해 꿈결 같은 질감이 돋보인다. 차 안과 자연을 오가며 녹음해 사운드가 입체적이다.
이제 감이 좀 잡히는가. 코펜하겐은 단순히 덴마크의 수도를 넘어서 유럽에서 가장 다채롭고 진보적인 음악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일렉트로닉, 재즈, 인디, 아방가르드, 팝, 테크노, 힙합까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혼합되고 변주된다.

코펜하겐 기반 인디 레이블인 ‘에스코(Escho)’ 또한 도시의 음악적 정체성을 만들었다. 덴마크 음악 신의 가장 실험적인 감각을 꾸준히 발굴하고 지지해 온 플랫폼으로, 대부분의 개성 넘치는 사운드들이 여기서 비롯됐다.
도시는 소리를 닮는다고 했던가. 차가우면서도 따뜻하고, 기이하면서도 다정한 음악들이 코펜하겐을 감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