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예 웨스트가 다시 한번 한국을 찾는다. 지난해 열린 리스닝 파티 ‘Vultures Listening Experience’에서 국내 팬들을 만난 이후 약 1년 만이다. 역시나 채널 캔디가 무대 연출과 제작 전반을 맡았는데. 무엇보다 이번 내한은 그의 첫 단독 공연이라는 점에서 더욱 상징적인 무대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공연 12일 전, 공동 주관사였던 쿠팡 플레이가 돌연 취소를 발표했다. 사유는 ‘칸예 웨스트’였다. 이전부터 숱한 논란을 끊임없이 생산해온 칸예였지만, 이번에는 그 수위가 남달랐다. 가장 큰 문제는 하일 히틀러였다. 게다가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을 샘플링해 삽입하기까지 했으니.
이쯤에서 묻게 된다.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칸예 웨스트는 어디까지 용납되어야 하는가. 의도가 어찌 됐든 그 자체로 타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강력한 촉매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공연은 채널 캔디의 단독 주최로 다시 재개됐다. 논란은 한편으로 밀려났고, 칸예 웨스트는 예정대로 한국 무대에 선다. 그리고 늘 칸예의 시각적인 세계를 함께 구축해낸 아티스트 ‘바네사 비크로프트’도 함께 한다.

이번 내한 공연의 포스터에도 그녀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난다. 살아 있지만 정지된 인물, 같은 신체 조건을 지닌 모델들이 만들어낸 익명성. 그렇게 작가는 인종과 신체를 바라보는 균질화된 시선에 무언으로 저항한다. 그런데 어쩐지, 불편하다는 감상을 지울 수가 없는데. 작가는 바로 그 ‘불쾌함’이 목표라고 말한다.
바네사는 12살 때부터 섭식장애를 앓았고, 신체에 대한 집착은 그녀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중심축이 되었다. 작품 속 모델들은 다양한 체형을 지니는데, 그 속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마주한다. 그렇게 모든 작품에는 ‘VB’,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이니셜에 숫자를 붙여 마치 자전적인 연대기처럼 기록된다.
“나는 두 개의 자아를 갖고 있다. 하나는 유럽계 백인 여성인 바네사 비크로프트, 또 하나는 미국 흑인 남성인 칸예 웨스트로서의 바네사 비크로프트다.”

그녀는 실제로 자신에게 흑인의 유전자가 섞여있다고 믿어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결과는 역시나 백인. 실망한 그녀는 ‘믿고 싶지 않다’라고 털어놓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일할 때, 마치 내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 백인이 아니라고 부정하면, 언젠간 정말 백인이 아니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정체성을 전복하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그녀의 시도는 이제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그리고 2008년, ‘808s & Heartbreaks’ 리스닝 파티를 시작으로 그녀는 칸예 웨스트의 시각적 세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칸예의 메시지에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퍼포먼스가 더해지니 논란이 그들의 예술 세계를 따라다닐 수밖에. 2016년, 이지 시즌 3 쇼에서는 르완다에서 일어난 대학살 도중 포착된 난민 캠프의 모습을 그대로 무대에 재현했다. 모델들은 좁은 공간에 빼곡히 서있었고, 쇼의 마지막엔 주먹을 높이 치켜들며 저항의 메시지를 담았다.

그녀가 말하길 패셔너블하고 화려해 눈길이 간 사진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르완다의 난민 캠프 사진이었다고.
“쇼에 서는 모델들은 절대 화려해 보이거나 멍청해 보이면 안 된다. 가난해 보여야 한다.”

이를 재현한 쇼에 가난과 우아함이라는 말까지 덧붙여 논란에 불을 지폈다.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작업물은 칸예 웨스트라는 이름을 제하고도 화두에 오르기에 충분했다. 이전 작품 <VB61>에서는 온몸을 검게 칠한 여성들이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프리카 학살을 표현했다는 메시지가 있었지만, 비판이 아닌 재현에 그친 연출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안겼고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바네사는 이 모든 반응조차 흥미롭다고 말한다.

“내가 하는 일은 약간의 불쾌감을 주는 것. 그걸 통해 각자가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걸 원한다.”

26일, 칸예 웨스트는 또 한 번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무대에 오른다. 그날 우리가 마주할 혼란과 당혹감은 어쩌면 이들이 의도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한국에서 펼칠 또 하나의 불편함은 어떤 형태로 우리 앞에 다가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