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록 앨범 커버에는 꼬리표처럼 붙어있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Parental advisory’. 이 표식은 한국으로 따지면 ‘19금’ 딱지라고 볼 수 있다. 법적인 효력이 없다는 것이 다르지만 스포티파이, 애플 뮤직을 포함한 국내의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는 이 표식이 붙은 음악을 들으려면 성인 인증을 거쳐야 한다.
서브컬처 음악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Parental Advisory’. 이는 고맙게도 장르 팬들에게 검열 없는 음악의 증거로 인식된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어쩌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이 표식이 나타나게 되었을까?
내 딸이 이런 상스러운 음악을 듣다니
미국의 민주당 상원 의원 앨 고어의 부인 ‘티퍼 고어’는 11살짜리 딸이 듣는 음악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잡지를 보며 자기 위로를 한다는 가사가 아주 노골적으로 담겨있던 프린스의 ‘Darling Nikki’.
I met her in a hotel lobby
(그녀를 호텔 로비에서 만났는데)
Masturbating with a magazine
(잡지를 보면서 자기 위로를 하고 있었지)
–Darling Nikki, 프린스
이런 성적인 가사가 무방비 상태로 내 자식들의 귀에 들리다니, 차마 용납할 수 없었을 것.
분노한 엄마들
티퍼 고어를 중심으로 당시 미국 재무 장관의 부인 수전 베이커 등과 함께 학부모 음악 조사 센터(Parents Music Resource Center)를 만들었다. 폭력과 성적인 요소들로 점철된 대중음악 시장을 규제하기 위해 높으신 분들의 부인들이 발 벗고 나섰다.
PMRC는 ‘Filthy 15(불결한 15곡)’을 선정해 발표했고 이 리스트에는 AC/DC, 주다스 프리스트 등의 헤비메탈 곡들부터 설립에 큰 기여를 한 프린스의 음악이 리스트에 당당하게 올랐다.
‘Filthy 15’ 리스트
- Prince – Darling Nikki
- Sheena Easton – Sugar Walls
- Judas Priest – Eat Me Alive
- Vanity – Strap On ‘Robbie Baby’
- Mötley Crüe – Bastard
- AC/DC – Let Me Put My Love Into You
- Twisted Sister – We’re Bot Gonna Take It
- Madonna – Dress You Up
- W.A.S.P. – Animal (F**k Like a Beast)
- Def Leppard – High ‘n’ Dry (Saturday Night)
- Mercyful Fate – Into the Coven
- Black Sabbath – Trashed
- Mary Jane Grils – In My House
- Venom – Possessed
- Cyndi Lauper – She Bop
재미있게도, 팝의 여왕 마돈나의 음악도 불결한 15곡의 리스트에 올랐다. 노골적이고 성적인 요소가 담겨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Gonna dress you up in my love / All over your body”
(너의 몸 전체를 내 사랑으로 뒤덮을 거야)
-‘Dress You Up’, 마돈나
그러나 이는 마돈나의 행보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마돈나는 자신이 섹시한 것이 곧 본질이라고 말하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PMRC는 그들이 선정한 문란한 음악에 표시를 만들어 소비자들이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는 1985년 11월 1일에 RIAA가 경고 라벨을 붙이는데 동의했다. 폭력적인 가사는 V(Violent), 사탄주의, 반기독교는 O(Ocult), 술이나 마약이 담긴 음악에는 D/A, 성적인 가사는 X 표시를 하기로 한다.

프랭크 자파의 가사 없는 연주곡 ‘Jazz from Hell’. 제목에 지옥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경고 라벨이 붙었다. 심지어 월마트와 같은 유통기업들이 스티커가 붙은 음반을 팔지 않거나, 성인들에게만 파는 등 엄마들의 분노가 사회에서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아티스트들과 록 음악팬들은 반발했고, 1990년에 자가 검열 방식으로 지금의 Parental Advisory Explicit Content’ 스티커를 붙이기로 했다.
자가 검열 방식이라 해도 표현의 자유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아티스트로서 용납할 수 없는 법. 1993년, Rage against the Machine 같은 밴드는 PRMC의 활동에 반발하며 롤라팔루자 무대에서 올 누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오히려 좋아!
메탈 밴드 머틀리 크루의 빈스 닐은 “이 경고 스티커를 붙이면 앨범 판매가 치솟았다”라고 말했다. 정확히 연계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너바나, Rage against Machine, 펄 잼 등이 활동했던 이 시기에 록 음악도 다시금 전성기를 맞았다. 물론 힙합도 ‘Parental Advisory’ 딱지의 수혜를 받았다.
티퍼 고어 부인은 저항에 굶주린 이들에게 오히려 먹잇감을 물려준 셈이다. 반골 성향의 아이들이 금단의 열매를 먹고 싶게 만들어버렸다.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는 자극적이고 재밌는 음악의 상징이 되었고, 옷에 프린팅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경고 스티커는 ‘힙스터’의 증표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