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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워진 지갑, 트렌드가 됐다

워크웨어 트렌드가 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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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 파일로의 등장과 올드머니 트렌드. 억지 트렌드라며 대중들에게 분노를 샀지만, 결국 세상은 클래식을 향해 가고 있다. ‘올드머니’라는 단어에서 조금만 벗어나 보자. 대학생을 표방하는 프레피룩과 괴짜 모범생 같은 긱시크. 깔끔한 차림새의 90s 미니멀리즘과 오피스룩. 네 가지 키워드는 최근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트렌드의 ‘이름’이다. 억지라던 그 트렌드는 이름만 바뀐 채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워크웨어-트렌드-이유

한 가지 올드머니의 스타일과 대척점에 있는 트렌드는 ‘워크웨어’다. 돈 좀 있는 대학생, 사무실에서 일하는 회사원이 아닌 안전해야 하고, 육체노동에 불편함이 없는 현장 노동자들의 옷으로 멋을 부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다섯 가지 키워드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노력’이 필요한 이들이 즐겨 입을 옷이라는 것.


엔데믹 시대엔 노는 게 일

억압된 사회로부터의 해방. 응축되었던 에너지가 폭발했다. 여행은 필수, 그동안 가지 못했던 여러 가지 페스티벌에서 신나게 놀았다. 정장을 입고 놀러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패션 역시 화려한 스타일의 연속이었다. 즐기고 뽐내는 게 가장 중요한 새로운 시대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디스퀘어드 2, 디젤 등 화려했던 Y2K 시절의 브랜드들을 오랜만에 마주하기도 했다. 노는데 쓰는 돈은 보복 소비로 명명된 지금을 합리화하기 충분하다.

파티는 끝났다

떨어질 생각이 없는 금리.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물가로 사회의 분위기는 꽤나 달라졌다. 우리의 지갑을 압박하는 상황 속, 더 이상 놀고먹기만 할 수는 없다. 일을 구하러 나가야 한다.

2023년 초부터 ‘조용한 럭셔리’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나는 명품이다’ 외치는 것 같은 발렌시아가나 미우미우가 아닌 더 로우, 로로피아나 등 ‘고급’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옷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제 방탕한 파티를 끝내고 격식을 차리기 시작한 걸까?

일로 사람을 만날 때는 격식을 차려야 한다.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는 앞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준다. 내 개성과 몸매를 뽐내는 옷보다 귀한 자재들이 입는 옷이 비즈니스맨들에게 더 안성맞춤이라는 것. 

일자리로 돌아갈 시간

워크웨어,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옷이다. 작업에 필요한 도구들을 옷에서 바로 꺼낼 수 있게 주머니가 많은 옷, 날카로운 철근들이 날아다니는 곳에서 다시 지출이 없도록 찢어지지 않을 질긴 원단을 사용했다. 이제는 실용성을 위한 스타일이 아닌 장식을 위한 스타일이 되어버린 워크웨어. 이는  ‘래퍼들이 입는 멋진 옷’ 혹은 ‘코로나로 인해 편한 옷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육체노동은 당시에 비해 적어진 현재이지만, ‘노동’이라는 행위의 상징이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파티를 즐기느라 바쁘던 우리는 왜 워크웨어와 더불어 오피스룩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을까? 이제는 일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말이다.

일을 하는 여성들을 위한 옷. 피비 파일로가 옷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다. 그런 피비 파일로의 등장이 이렇게 각광받다니. 단순히 전설의 디자이너가 돌아오는 것 그 이상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21세기, 현대의 워크웨어가 바로 피비 파일로가 건넸던 미니멀하고 실용적인 오피스 룩이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패션의 상생이 이제는 이해가 좀 된다. 우리는 이제 정부가 주는 돈으로는 부담스러운 물가를 견뎌내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고, 당장의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급여를 줄 사무실을 찾고 있다.

고학력에 고스펙 혹은 하나에 미친놈이 되고 싶어 열심히 움직인다. 일을 구한다고 구해지는 것도 아니니, 입사 전부터 하는 피나는 노력. 이러한 흐름 때문에 프레피 룩, 긱 시크 트렌드가 세상 모든 ‘취준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아닐까. 필자 혼자 쓰는 시나리오겠지만, 작금의 트렌드는 이제 파티가 아닌 노력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 아닐까.

정, 반, 합

패션은 나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트렌드는 시대를 반영한다. 많은 사람들이 트렌드를 따르는 이유는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 반골들은 새로운 것을 파고 다니겠지만, 이 역시 대중들의 공감을 얻게 되었을 때는 트렌드가 되는 것이다. 변증법처럼 돌아가는 세상이라, 고개를 끄덕인다.


흔히 외골수처럼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멋지다고 말한다.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우매한 사람이라는 듯이. 그러나 괜히 나는 트렌드를 따르는 사람이야 하며 자책할 필요가 없다. 그 많은 사람들이 무엇에 공감하는지 찾는 일 역시 우리를 멋지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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