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상, 그중에서도 1분 내의 짧은 영상이 정보를 전달해 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흐름에 맞춰 책과의 안녕을 외친 이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텍스트힙’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등 다양한 요인에 사람들은 다시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읽어보는 활자에 글자만 읽다가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다. 숏폼에 찌든 집중력 때문에 결국 한 번 더 읽는 내 모습이 괴로워 책을 덮고 만다.

영상도 짧아지는 마당에 몇백 페이지 동안 이어지는 글을 읽으려 하니 집중이 안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새로운 시대에 이 고전적인 방법은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언제나 해결책은 있다. 짧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맞게, 짧고 재밌는 글을 한 번에 읽는 것이다. 번역 없이, 한국인 작가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문장들로 써 내려간 소설 한편이면 충분하다.
‘단편 소설집’
다양한 이야기가 한 권에 담겨 있어, 도파민 충족시켜 주면서 부담도 덜어주는 ‘단편 소설집’을 추천한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박정민 배우가 추천의 말에 써둔 한마디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넷플릭스만큼 재밌는 책이 있다고?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다. 요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책은 단편 소설집이다. <혼모노>에는 일곱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진짜란 무엇인가, 또 가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집 표제작인 <혼모노>는 굿판 도중 신령들과의 연결이 끊긴 30년 차 무당이 자신보다 어린 무당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세대 갈등, 전통과 현대의 대립 등 뜨거운 사회적 쟁점을 짜릿한 서사로 느껴보고 싶다면, 현시점 베스트셀러 <혼모노>를 읽어보자.
진짜 순식간에 읽게 되더라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 인간 세계를 다룬 초단편 소설, 김동식 작가의 <회색 인간>이다. 무인도에 갇히거나, 신의 계시를 받게 되거나. 디지털 요양 시설 같은 영화적 요소들을 몰입감 넘치게 다뤘다.
글이 짧은 만큼 무려 스물네 편의 이야기가 책 한 권에 담겨 있다. 표제작 ‘지저 세계’에서부터 시작되는 그의 세계관. 어두운 배경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희망이 마음을 울린다.
김동식 작가는 주물 공장에서 일하며 글쓰기를 배운 것도 아니고,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김동식 작가만의 읽기 쉬운 화법이 그들에게 책을 읽게 만들었다.
2017년 출간 이후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 책 <회색 인간> 속 디스토피아를 경험한 이들은 하나같이 그만의 스토리 전개에 놀라움을 표했다.
예비 베스트셀러를 미리 만날 수 있습니다

문학동네에서 주최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상 중 하나인 ‘젊은작가상’. <혼모노>를 쓴 ‘성해나’ 작가 역시 2024, 2025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매해 선정된 작품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는 단편소설집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시리즈로 신인 작가들의 재밌는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출간 이후 1년 동안은 무려 7,700원에 판매된다. 현시대에 책 가격으로는 보기 힘든 숫자이지만, 수상작품집 시리즈는 젊은 작가들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 따라 저렴한 가격에 읽을 수 있다.
이후 베스트셀러 소설집이 될지도 모르는 작품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새로운 문체들로 가득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시리즈는 매년 확인해 보는 것도 좋다.
현실이 가장 무서운 법

“무서워봤자 얼마나 무섭겠어, 책이잖아”라고 내뱉는 순간, 그 말에 책임지기 쉽지 않을 터.
2022년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작, 2023년 미국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작, 전 세계 24개국 변역 계약, 그리고 누적 판매 10만 부 돌파.
현실만큼 무서운 건 없다. 진짜 공포가 이 세상에 있다고 말했다. <저주토끼>는 초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현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 그리고 잔혹함을 이야기한다. 저주가 복수를 위한 것으로 인식되지만, 정보라 작가는 복수라기보다 작용과 반작용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언급했다.
일상을 파고드는 거친 감정들 사이에서 받는 묘한 위로, <저주토끼>를 통해 느껴보자.
그냥 슬퍼해라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택시 기사, 화장실과 동격으로 취급받는 화장실 청소부, 살아서도 죽어서도 박스를 줍고 계신 할머니 등. 세상에서 살아남았지만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이들”
책 소개 글부터 마음이 아려온다. 내가 진짜 그렇게 보진 않았는지, 나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일지도 걱정이 됐다. 시대의 아픔과 비극, 소설집 <비행운>은 그 고통을 이해해 줄 것 같은 공감을 일으킨다.
불행한 인물밖에 나오지 않는데, 당연히 슬픈 것 아니냐는 물음에는 슬퍼하라고 답하겠다. 등장인물들의, 혹은 실제 사람들의 막막한 어둠을 마주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신경 쓰지 않았던 나의 안녕을 다시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을 동경하는 ‘비행운(飛行雲)’과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연쇄적 불운 ‘비행운(非幸運)’
김애란 작가가 남긴 어둠 속 희망 한 줄기. <비행운>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