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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결국 지는 게임이야,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이야기

27세에 요절한 천재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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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이 고통을 수반하는 것일까, 고통이 창작을 수반하는 것일까. 미안할 정도로 사랑해버린 예술가들의 고통은 머지않아 그 근원지를 집어삼켜 버렸다. 커트 코베인, 지미 헨드릭스, 장 미셸 바스키아와 같이 27세에 요절한 천재 에이미 와인하우스. 그녀는 준비되지 않은 채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으로 등 떠밀렸고  발가벗겨졌으며,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단 2장의 앨범으로 대중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게 된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대하여.
영국을 강타한 재즈 싱어의 등장 재즈로 둘러싸인 채 유년기를 보냈다는 그녀.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 중인 삼촌들과 재즈 가수였던 할머니, 신시아의 영향으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확고한 음악적 뿌리를 갖게 됐다. 한 인터뷰에서 “나는 재즈 속에서 살았다. 재즈 가수의 목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는 재즈를 강조하지 않았다.”라고 밝히기도. 낮은 음역대를 아우르며 무관심한 듯 질러대는 그녀의 보컬은 앨범 전체에 ‘재즈스러움’을 더했다.  그 첫 번째 결과물 [Frank]. 발매 첫 주에 2만 2천장을 판매하고, 빌보드 200 차트에 진입한 데뷔 앨범은 그녀를 알리기에 충분했다. 잠깐이지만 그녀와 같은 브릿 스쿨 (BRIT School)을 다녔던 영국의 대표 가수, 아델은 이 앨범으로 인해 기타를 잡게 되었다며 존경심을 표했을 정도.  그녀의 사랑은 명반을 낳았고, 타락을 남겼다. 2005년, [Back to Black]이라는 명반을 탄생시켰지만 동시에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연애가 시작됐다. 에이미는 런던의 한 펍에서 블레이크 필더-시빌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당시 그는 연인이 있었지만 에이미와 몇 번의 만남을 가진 후, 관계를 정리했다고. 사랑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미는 가슴팍에 포켓 디자인과 함께 ‘Blake’라는 문구를 블레이크는 귀 뒤에 ‘AMY’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또, 에이미는 블레이크와 하루에 24시간 주 7일 함께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블레이크는 6개월 만에 전 애인에게 돌아간다. ‘널 너무 사랑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넌 바람피우는 걸 좋아했고 난 대마를 좋아했지 인생은 파이프 같아 그리고 난 그 안을 굴러다니는 작은 동전 같아’ – ‘Back to Black’ by Amy Winehouse 가사 중 일부 마약의 길로 들어선 그녀 블레이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친구와 잠자리까지 했던 에이미. 그녀는 결국 2007년 블레이크와 재결합하며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그녀가 마약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도 그때 즈음. 20대를 마약과 함께 보냈다는 블레이크는 <제레미 카일 쇼>에서 에이미가 처음 헤로인을 했던 때를 기억한다고 고백했다.  알루미늄 호일로 헤로인을 피우던 그의 옆에서 에이미는 한번 해봐도 되겠냐며 물었고, 블레이크는 결국 헤로인을 넘겨주었다고. “그 순간이 에이미 와인하우스라는 뮤지션 인생의 갈림길이었을까요?”라는 호스트의 물음에 블레이크는 “음, 네”라고 답했다. 천재성과 스타성 높게 솟아난 비하이브(Beehive) 헤어스타일, 검게 칠한 스모키 아이라인, 짧은 원피스까지. 아이코닉한 패션과 음악 스타일을 두루 갖춘 그녀는 2장의 앨범 만으로 빠르게 정점을 찍었다. 그런 그녀가 걷는 타락의 길, 유명 인사들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이처럼 맛있는 먹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파파라치들은 집요하게 그녀를 쫓아다니기 시작했고, 매체들은 마약과 행실을 버무린 자극적 타이틀로 지면을 도배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3일간 따라다녔던 파파라치가 공개한 일지를 보면 그녀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에이미가 살고 있는 캠든 스트리트에 도착한 것은 11시였습니다. 저는 코너에 앉아있는 3명의 사진작가들을 마주쳤습니다. 모서리를 돌자마자 9명의 다른 사진작가들과 마주쳤고, 그들은 조금 흥분된 상태였습니다. 저는 곧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놓치셨네요! 블레이크는 10분 전에 집에 들어갔다네요.” 에이미의 집은 비교적 조용한 지역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이미는 늘 공개적인 장소에서 ‘폭동’을 일으켰고, 지면 신문을 장식했습니다. 에이미는 2007년 [Back to Black]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부터 파파라치들의 타깃이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연속극이 된 것은 그녀가 블레이크와 결혼하면서부터죠. 그녀의 음주, 마약, 폐 질환, 공격적인 행동 그리고 음악적 성공에 대한 기사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안녕, 에이미 2009년 에이미는 블레이크와 이별했다. 마약에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긴긴 암흑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갔다. 겨우 마약을 끊어냈지만 술에 대한 의존도가 극에 달했던 2011년. 그녀는 유럽 투어의 첫 도시인 베오그라드로 떠났다. 하지만 무대 위를 불안한 걸음으로 서성댔고 넘어졌으며, 가사를 잊어 제대로 노래할 수 없었다. 호하던 관중들은 이내 화난 목소리로 야유를 던졌다. 결국 중단된 공연. 이 공연은 그녀가 생전에 섰던 마지막 무대이며, 이후의 공연을 취소한 그녀는 2011년 7월 23일 자택에서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사망 선고를 받았다. 관객 중 한 명이 촬영한 그녀의 베오그라드 공연 영상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통을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무대 위 그녀의 모습은 슬픔의 몸서리처럼 느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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