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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더기 옷이 얼마라고?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일본 전통의 '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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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천 조각들을 모아 붙여 만든 이 옷들을 보라. 드라마 ‘추노’에 나올 법한 거적때기 같지만, 일본의 전통적인 패치워크 기술인 ‘보로(ボロ)’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아주 전통 있는 옷이다. 가격도 천차만별, 장인의 손길이 필요한 이 옷은 1천만 원 혹은 그 이상까지도 간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보로 스타일의 옷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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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는 너덜너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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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아저씨들이 나에게 “보루 가온나” 라고 말했다. 담배 한 보루? 그날, 독립적으로 보루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어리둥절했지만 ‘보루(ぼろ)’는 일본에서 유래된 말로, 현장에서 쓰는 걸레였다. 앞서 언급했던 ‘보로’ 역시 누더기, 너덜너덜하다는 뜻을 가진 일본어이며, 이 스타일은 17세기 일본 에도 시대 시골에서부터 시작된다.

비싼 가격 뒤에 숨어있는 궁핍했던 서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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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대 초, 일본 북부 지역 농민들 사이에서 해진 옷을 덧대며 오랫동안 입기 위해 시작된 기술인 보로. 면이 부족한 탓에, 남은 천 쪼가리나 마(삼베)로 옷을 꿰매 입었다. 이렇게 옷을 덧대니 겨울까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어 너덜너덜해 보여도 여러 마리 토끼를 잡는 아주 실용적인 의복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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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일본을 대표해

오랫동안 새 옷 한 벌 얻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덧대고, 덧대어 입었던 보로 기술은 이제 일본을 대표하는 의복 기술이 되었다. 더 이상 누더기가 아닌 ‘작품’이 되어버린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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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문화와 장인 정신에 디자인 철학을 둔 캐피탈(Kapital)이 보로 스타일로 가장 유명하다. 캐피탈은 일본 데님의 성지 오카야마에서 리바이스, 리 등 미국 데님을 카피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 레플리카에 염증을 느껴 자신만의 브랜드를 시작한다. 1984년, 그는 디자인을 배운 적도 없지만, 오직 데님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만의 데님을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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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 생산으로 시작했던 캐피탈은 버려질 문제 있는 원자재들이 아까웠다. 그래서 버려질 원단들을 수선, 가공하여 판매했고, 이는 캐피탈만의 보로 디자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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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단과 대비되는 색상으로 핸드 스티치를 하는 일본 전통의 사시코 기법도 사용한다. 일 장인 정신이 한곳에 깃든 보로 데님은 캐피탈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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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일본의 전통 봉제 기법과 데님에 몰두했던 캐피탈의 보로 자켓은 국내 편집샵 스컬프 스토어 기준 2백7십만 원. 

캐피탈 외에도 비즈빔, 요지 야마모토, 포터 클래식 등 일본을 대표하는 다양한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보로 디자인을 애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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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이 선택한 ‘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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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루이비통 2013 S/S 컬렉션 런웨이에 캐피탈의 시그니처 디자인인 ‘보로 데님’이 등장했다. 이는 캐피탈을 이끄는 ‘키로 히라타(Kiro Hirata)’와 당시 루이비통 디렉터였던 ‘킴 존스(Kim Jones)’가 힘을 합쳐 만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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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하신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에서 누더기라고 불리는 보로 패치워크를 사용하는 것은 놀랄 일이었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킴 존스는 루이비통 마지막쯤에 스트릿 스타일을 녹여 내려고 많은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보로 패치워크가 매력 넘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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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존스는 13SS 컬렉션을 통해 현대 패션에서 시대를 초월한 장인 정신의 매력을 강조했고, 이는 아이코닉 한 컬렉션으로 패션 팬들을 열광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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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외에도 리바이스와 준야 와타나베, 뉴발란스, 폴로 랄프로렌 데님 & 서플라이, 타미 힐피거 등 해외 브랜드가 보로 스타일을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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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옷에 제2의 생명을 불어넣는 ‘보로’. 그저 서민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의복 양식인데, 결국 현대에 ‘문화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어려운 시대에 악착같이 아끼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도 어쩌면 미래에 아름다운 생활 양식으로 바라봐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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