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몸무게만큼 채워 놓은 사탕이 의미하는 것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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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몸무게만큼 채워 놓은 사탕이 의미하는 것

그가 사랑했던 이를 영원히 기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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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남자-커플

미국의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를 대표했던 현대 예술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élix González-Torres). 그는 사회적 멸시와 차별을 받던 쿠바 태생 유색인 이민자이자 동성애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숨기지 않았다. 도리어 대놓고 드러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사랑을 이야기했고, 이에 대중은 환호했다. 그건 동성애자의 사랑 역시 누구나 하는 일반적인 ‘사랑’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1991년, 8년을 함께한 연인 로스 레이콕(Ross Laycock)은 에이즈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곤잘레스 토레스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자신이 느꼈던,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작품에 담았다.

<“Untitled” (Perfect Lovers)>,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Untitled” (Last Light)>, <“Untitled” (Billboard)> 등 로스를 향한 그리움과 애정이 담긴 작품들은 모두 흥했다. 그중 사탕을 이용한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는 그의 대표작이 되었고 머지않아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렸다. 

어쩌면 운명의 지독한 장난일지도 모른다. 1996년 미국 마이애미, 그는 로스와 같은 병명 에이즈로 생을 마감했다.

<“Untitled” (Perfect Lovers)>

시계-전시장-여자

작품은 동일한 두 개의 시계를 벽에 설치해 두고 동시에 작동시킨다. 처음엔 똑같이 흐르던 두 시계. 그러나 둘의 시간은 점점 달라지고 끝내 한쪽이 먼저 수명을 다하게 된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만났지만,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시간은 다르다. 누가 먼저 곁을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는 시간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냥 받아들여야만 한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가 사랑했던 연인 로스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것처럼.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가 연인 로스에게 보내는 편지

편지-영어-시계두개

“1988년, 나의 연인에게.

시계를 두려워하지 마. 그건 우리의 시간이고, 시간은 우리에게 늘 너그러웠어.

 우리는 승리의 달콤한 맛을 시간에 새겼고 특정 공간과 특정 시간에 만나 우리의 운명을 정복했지.

 우리는 그 시간의 산물이기에, 때가 되면 마땅히 갚아야 해. 

우리는 시간을 함께 하도록 맞춰졌어. 지금 그리고 영원히.

사랑해.”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사탕-로스의초상화-예술작품

“무제” (LA의 로스 초상화)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로스가 에이즈에 걸리기 전 몸무게인 175 파운드에 맞춰 전시장 한구석에 사탕을 쌓아둔 작품이다. 관람객은 사탕을 자유롭게 가져가거나 먹을 수 있다. 그렇게 사탕은, 그러니까 로스의 초상화는 자신의 일부를 잃음과 동시에 관람객 몸의 일부가 된다.

한편 전시장은 사탕의 무게가 줄어들면 다시 175 파운드에 맞게 채워, 로스의 초상화를 복구한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이러한 순환은 반복되고 그는 그렇게 자신의 작품을 존속시켰다.

그는 작품과 관련된 정보와 소유를 인정하는 증명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해당 증명서를 보유하고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작품을 새롭게 제작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로서 사탕을 이용한 그의 작품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으며 어디서나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로스의 불멸을 소원하는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포춘쿠키-더미-예술작품
초콜릿-예술작품-더미
사탕-예술작품-더미

 <“Untitled” (North)>

전구-예술작품-펠릭스곤잘레스

함께 반짝이던 알전구들, 하나둘씩 서로 다른 시간에 불이 꺼지더니 이내 전부 빛을 잃고 만다.

한 줄로 이어진 이 알전구들의 수명은 인간의 수명과 그리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흘러간다. 각자가 가진 특정한 시간이 있고 그 시간 동안 유지되다 결국 모두 소진될 뿐이다.

<“Untitled” (Billboard)>

침대-자국-흔적

조금 전까지 누군가 누워있었던 듯 자국이 선명한 두 베개와 흐트러진 이불, 그러나 텅 빈 침대. 한때는 그와 로스가 함께 했던 침대지만 이제는 로스가 없다. 그저 둘이었다는 흔적만 남았을 뿐.

그는 이 사진을 뉴욕 전광판 곳곳에 전시했다. 이는 사회에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성 소수자의 가장 사적인 공간이 공적인 공간으로 이동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은유적 표현 방식은 동성애자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임을 시사했다.

침대-빌보드-예술작품
침대-빌보드-예술작품
침대-빌보드-예술작품

<현대 예술계의 시인>

펠릭스곤잘레스토레스-예술가-남자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품은 한 마디로 시적이다.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일상 속의 물건을 이용해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개인의 이야기를 모두의 이야기로 변화시킨다. 그저 누구나 겪는 사랑, 이별 그리고 상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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