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오르던 사랑은 소멸이 아닌 영원이 되었다 커버이미지
love

불타오르던 사랑은 소멸이 아닌 영원이 되었다

시드와 낸시, 순수하게 타락해버린 사랑

URL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공유해보세요!

“뜨겁게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장 22절, ‘뜨겁게 서로 사랑할 것’을 명하고 있다.

청춘들의 사랑은 언제나 뜨겁다. 그이를 사랑하는 것인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술보다 강력하게 취할 수 있는 감정일 터.

존 레논과 오노 요코. 프랭크 시나트라와 에바 가드너. 한 세기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커플 중 에디터가 가장 좋아하는 커플은 바로 ‘시드 비셔스와 낸시 스펑겐’이다.

시드비셔스-낸시스펑겐-사랑-세기의커플-섹스피스톨스-펑크-펑크록-글로우업매거진

둘의 사랑은 청춘과 열정 그리고 중독과 타락을 끝까지 함께했다. 그리고 <시드와 낸시>라는 영화를 통해 이들의 격렬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고작 2년, 이들의 불타는 사랑은 2년 만에 죽음으로 끝났다.

나는 25살이 되기 전에 원하는 대로 살다가 죽을 거야

시드비셔스-낸시스펑겐-사랑-세기의커플-섹스피스톨스-펑크-펑크록-글로우업매거진


학창 시절 많은 학생들이 ‘반항적인 나’의 모습을 로망으로 가지고 있었을 터. 커트 코베인, 비틀스, 오아시스 등 수많은 록스타들이 주류 문화에 반대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꿋꿋하게 외치던 것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그중 섹스 피스톨스의 ‘시드 비셔스’는 펑크의 멋을 전국에 제대로 알린 인물 중 한 명이다. 펑크라는 문화가 가진 저항 정신을 지금까지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그가 남긴 영향력은 오버해서라도 가히 엄청났다고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의 자물쇠 목걸이와 패션 스타일, 펑크 정신은 ‘펑크’하면 떠오르는 아이콘이자, 펑크족들의 필수 아이템이다.

시드비셔스-낸시스펑겐-사랑-세기의커플-섹스피스톨스-펑크-펑크록-글로우업매거진

베이스도 칠 줄 모르는데, 똘끼 하나로 섹스 피스톨스의 베이시스트가 된 시드 비셔스는 히피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헤로인 중독자들이 우르르 모인 엄마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연스레 그 역시 17살 때 헤로인에 중독됐다.

그런 그의 곁에는 ‘낸시 스펑겐’이라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낸시는 아티스트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그루피(Groupie)’였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에게 창녀라고 불렸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삶을 겨우라도 견뎌낼 마약과 시드만 있었으면 그만이었다.

시드비셔스-낸시스펑겐-사랑-세기의커플-섹스피스톨스-펑크-펑크록-글로우업매거진

낸시 스펑겐 역시 심각한 약 중독자였다. 생후 3개월 만에 기괴하게 운다는 이유로 항불안제인 ‘바르비투르산’을 처방받았다. 성인에게도 약효가 강해 처방을 꺼리는 약을 3개월 만에 받았다고. 이후 13살 때 처음으로 마약을 접한 뒤, 중독자의 길을 걸었다.

소멸, 그럴 수밖에

시드비셔스-낸시스펑겐-사랑-세기의커플-섹스피스톨스-펑크-펑크록-글로우업매거진


당시 영국은 오일 쇼크, 경제 위기로 실업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세상마저 모두 실직하고 길거리로 나앉은 상황에, 중증 약쟁이들끼리 만나 제대로 인생을 살기란 가히 불가능에 가까웠다.

밴드 활동으로 번 돈으로 함께 마약을 즐겼다. 격하게 주먹을 휘두르며 다투기도 했다. 귀를 물어뜯을 정도로 싸웠다. 그러나 둘의 세상에는 조연도 없었다. 시드와 낸시, 두 명뿐이었다. 시드의 친구이자 섹스 피스톨스의 보컬인 ‘쟈니 로튼’이 사랑 때문에 밴드에 소홀해진 시드의 여자친구를 ‘악녀’라고 불렀다. 시드는 관객에게 욕하고, 약에 취해 밴드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낸시의 말만 곧잘 들었다. ‘섹스 피스톨스의 진짜 리더는 너야’. 그녀의 한마디에 그는 리더가 되기 위해 또 멤버들과 싸움을 벌였다.

시드비셔스-낸시스펑겐-사랑-세기의커플-섹스피스톨스-펑크-펑크록-글로우업매거진

결국 섹스 피스톨스와 사이가 나빠진 시드 비셔스는 밴드를 탈퇴했다. 밴드가 아니어도 시드는 낸시와 함께여서 괜찮았다. 역시나, 낸시는 솔로 활동을 택한 시드의 매니저 역할을 했다.

그렇게 둘은 뉴욕의 한 호텔에 함께 머물렀다. 당시 뉴욕은 불량배들이 넘쳐났다. 같은 시대를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된다고. 시드는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낸시는 타임스 스퀘어의 어느 칼 가게에서 재규어가 새겨진 5인치 사냥용 접이식 칼을 시드에게 선물했다.

1978년 10월 12일, 시드가 울면서 얼른 앰뷸런스를 불러달라고 소리쳤다. 호텔 방 화장실 안에 쓰러져 있었다. 칼에 찔린 채로. 시드는 약에서 깬 뒤에야 낸시를 발견했다. 심지어 낸시를 찌른 칼은 바로 전 날 그녀가 시드에게 선물해 준 칼이었다. 

“내가 죽였어요. 왜냐면 난 더러운 개잖아요”

시드는 온종일 자신이 죽였다고 진술했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낸시가 사라진 세상, 감옥에서 그는 두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다. 이후 그는 정말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살았다.

그 해 12월 9일 시드는 어느 클럽에서 상해 사고를 내 한 번 더 감옥에 가게 되었다. 그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시드의 어머니는 석방을 축하한다며 대량의 헤로인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헤로인을 투여하며 생을 마감했다.

뜨거운 사랑은 소멸이 아닌 영원이 되었다

시드비셔스-낸시스펑겐-사랑-세기의커플-섹스피스톨스-펑크-펑크록-글로우업매거진


이들은 뜨거운 사랑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다. 시드는 낸시를 향한 시선 따윈 안중에 없었다. 조건 없는 사랑이었다. 낸시의 죽음은 시드의 죽음을 만들었다. 뜨거웠던 사랑꾼 둘은 죽음으로 소멸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소멸하지 않았다. 모두 시드와 낸시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그 죽음은 평생을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꺼진 불씨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불타게 되었다.

시드비셔스-낸시스펑겐-사랑-세기의커플-섹스피스톨스-펑크-펑크록-글로우업매거진

결혼과 연애. 예로부터 어린 사랑은 진심이고, 앞으로를 살아갈 사람과의 사랑은 현실이었다. 집을 가지고 있는지, 돈은 잘 버는지, 집안은 어떤지. 사랑하는 데 이 모든 걸 확인해야 한다. 결혼정보 회사에서는 이제 점수까지 매겨준다.

뭐, 현실적인 사랑이 나쁜가? 아니다. 그 조건들은 결국 서로를 끌어당기는 매력일 터.
그럼 시드와 낸시처럼 서로를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사랑은 나쁜가? 아니다. 그들은 어리석지만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을 했을 뿐.

잘못된 사랑이 있다 한들, 이들의 사랑은 나쁜 게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기란 좋은 것이다. 

시드비셔스-낸시스펑겐-사랑-세기의커플-섹스피스톨스-펑크-펑크록-글로우업매거진-개리올드먼

“시드와 낸시를 동경하는 것은 열여덟의 특권이다”

– Jooyoung Shin, 왓챠피디아 영화 <시드와 낸시> 코멘트

열여덟. 스무 살 어른이 되기 전 애석하게도 가장 진실한 사랑을 찾는 순간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만 바라봐 줄 사랑을 바라는 나이다. 그런데, 그런 사랑은 80살 할아버지의 마음속에도 낭만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경제적 현실을 바라보고 결혼 상대를 고르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사랑이든, 어리석은 사랑이든 그 목표가 사랑인 건 얼마나 낭만적인가. 시드 비셔스와 낸시 스펑겐의 사랑에는 마약과 타락이 있었지만 악의는 없었다. 당장 지금도, 그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미친 듯이 사랑하고 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기.
‘No Future’ – Sex Pistols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