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호시크(Boho-Chic)라는 트렌드 키워드가 꾸준히 들려오고 있다. 프린지, 태슬이 주렁주렁 옷과 가방에 달리고,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 중인 올해의 컬러 ‘모카 무스’와도 잘 어울리는 패션 스타일이다.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과 ‘끌로에(Chloe)’가 이런 스타일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트렌드에 맞춰 갑자기 이런 시도를 한 것은 아니고, 꾸준히 펼쳐오다 다시 주목을 받는 것.

대부분 90년대 – 2000년대 스타일이 보헤미안, 히피 스타일이라는 말로 주목을 받고 있다. 피비 파일로의 끌로에와 모델 케이트 모스의 합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한 그 시절 보헤미안룩.
그런데 조금 아쉽다. 여자들 사이에서는 주목도 많이 받고, 올해의 컬러와 찰떡인 패션 스타일인데 남자들의 패션 트렌드로서는 보헤미안, 히피 같은 키워드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뭐, 켄드릭 라마의 슈퍼볼 공연 이후 일어난 플레어 진 열풍이 그 중 하나일 지도.
그 놈의 보호 시크, 다들 입고는 싶어하는 데 그 안에 깃든 정신이나 생활 양식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까다롭게 역사를 따지고 옷을 입는 소위 ‘지독한 패션 꼰대’ 남성들에게 아직 전파가 제대로 덜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헤미안 스타일에 어울리는 시대 정신을 위해 우리는 케이트 모스가 아닌, 비틀즈가 전성기였던 시절로 돌아가야한다. ‘룩’이 아닌 제대로된 히피의 맛을 볼 수 있을 터.
60년대 진짜 히피 시대, 그 시절을 대표하는 것은 다름 아닌 비틀즈다.
히피 스타일 말고, 진짜 히피 인사드립니다.

바가지 더벅머리, 폭 좁은 넥타이와 몸에 꼭 맞는 정장 셋업. 60년대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영국 밴드 ‘비틀즈(Beatles)’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럴 수 밖에. 초창기 그리고 미국 활동의 시작,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알리는 전설의 비행기 앞에서 손을 흔드는 사진 속에서도 깔끔한 수트 차림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틀즈의 진짜 모습은 모드족을 표방했던 초창기에 있지 않다. 그들은 점잖고 건실한 청년들이 모인 밴드가 아니었다. 평화와 자유를 갈망하는 보헤미안, 히피들의 표본이자 상징이었다.
히피 시대가 오기 전까지 남자 패션에서는 분명 비틀즈의 모드룩처럼 깔끔한 정장 스타일이나 롤링 스톤스의 록커 스타일 두 스타일의 격돌이 있었다. 그러나 반문화는 반문화를 낳는 법. 점점 남자들 사이에도 프릴 셔츠나 블라우스, 등 여성스러운 옷들을 입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한두명씩 늘어났다.


그렇게 긴 머리와 구레나룻, 플라워 패턴과 인디언 스타일의 대유행이 히피 문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평등과 평화, 자유를 갈망하던 이들이었기에 패션으로서의 과감한 시도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히피 문화가 대두되었다고 추정하는 66년 이후 비틀즈는 히피들의 히피가 되었다.
이들의 노래 ‘All You Need Is Love’는 히피 운동을 대표하는 꽃과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이후 히피 문화는 대중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히피 패션을 고수하기 시작했다.

세계를 모두 사랑하는 패션
히피 패션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차용한 것이다. 화려한 무늬가 눈에 띄는 상의들을 입었는데, 대게 이집트,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인도 같은 동양의 오리엔탈 무드를 차용했다고.

히피들은 ‘보헤미안’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체코 보헤미아 지방에서 유래된 것이며 보헤미아의 집시들이 당시 히피들과 유사한 움직임을 보였다. 둘 사이의 가장 큰 패션 공통점으로는 소재. 면, 린넨 등의 천연 직물을 주로 사용했다고. 타국의 문화를 온몸으로 수용하는 것이 곧 히피들의 패션이었다.

가장 진보적일 것 같던 이들은 직접 옷을 염색하고 만들어 입는 전통적인 방식을 택했다. 예술가들이 많았던 히피 문화에 공산품보다는 개체마다 특징을 가진 의상이 훨씬 의미가 깊었다. 타이다이가 주는 오묘한 색감과 디자인은 그들이 중요시했던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것도 히피 패션의 큰 특징이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에는 세계와 전통을 중시하는 ‘We are the World’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
이는 남녀 구분이 모호한 패션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치마, 긴 머리, 케이프 등의 성별을 상징했던 의상들을 남녀노소 모두가 입었기 때문.
‘히피 패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있지만, ‘정의’하는 것은 그들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모드족, 비트족 등 다양한 반문화의 패션 스타일을 모두 각양각색의 히피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히피들의 필수 신발 하나, 그리고 스티브 잡스
비틀즈 이후로 서양의 대중문화에 깊게 자리 잡은 히피 패션에는 꽃무늬, 긴 머리, 수염말고도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팔바지, 토속적인 악세서리, 청키 부츠 등. 지금의 보호시크, 한국에서는 웨스턴 룩으로도 불리는 패션 스타일과 꽤나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애플을 만든 기업가 ‘스티브 잡스’의 패션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가? ‘이세이 미야케 니트’, ‘리바이스 501 청바지’, ‘뉴발란스 992’. 그가 대중들에게 신제품을 공개할 때마다 입고 나온 대표적인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템이 한가지 더 있다. 바로 ‘버켄스탁’.

그는 애플 초창기 시절 맨발에 버켄스탁을 자주 착용했다. ‘맨발에 버켄스탁’은 히피들의 패션 특징이었다. 스티브 잡스 역시 히피 문화와 깊게 관련된 인물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전 여자친구 ‘크리산 브레넌’이 스티브 잡스의 버켄스탁을 ‘그의 유니폼’이라고 칭할 정도로 그가 애정을 가졌던 아이템이었다고.

진짜 히피들은 이렇게 패션을 즐겼다. 스타일만 남아 있는 보호 시크 트렌드와는 정신을 향유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갖는다. 물론 히피와 보헤미안은 엄연히 다르겠지만, 작금의 보호 시크라는 단어에는 ‘트렌드’라는 이름에 공통적으로 평등과 평화, 자유를 외치던 그들의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수용하며 외친 ‘평화’, 남녀 구분이 모호한 패션 스타일이 외친 ‘평등’, 그리고 이 모든 걸 ‘사랑’으로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들이 그런 복식을 착용한 이유는 독특해지고 싶은 게 아니었다.
트렌드가 넘쳐나는 지금, 단순한 코스프레 이상의 정신을 느낀다면 더욱 즐거운 패션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