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꽃미남 선배, 제2의 제임스 딘으로 불렸던 리버 피닉스(River phoenix). 그는 <조커>의 주연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의 형이자, 미래가 기대됐던 할리우드 유망주였다. 엄청난 외모 때문에 그의 연기력이 묻히는 경향이 있지만 그는 타고난 천성 배우.
천재들은 슬픈 결말을 갖는다. 리버 피닉스 역시 얼굴 천재와 연기 천재를 담당했지만, 그의 삶은 기구했다.

히피 부모 밑에서 태어난 피닉스 형제

피닉스 남매의 모친인 알린 듀네츠는 평범한 일상이 싫었다. 언제나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했던 그녀는 결국 쳇바퀴 같은 삶에서 도망쳤다. 옷 몇 벌과 적은 돈을 가지고 떠난 히치하이킹 여행에서 만나게 된 히피 ‘존 바텀’. 그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가졌고, 아이의 이름은 ‘리버 주드 바텀’. 히피 부부다운 독특한 발상의 이름이었다. 리버는 강, 주드는 비틀즈의 ‘헤이 주드’에서 따온 것이다. 리버의 동생들도 레인보우, 호아킨, 리버티, 서머 등 호아킨 빼고는 이름을 자연에서 빌려왔다. 리버는 ‘강’이라는 흔치 않은 이름 때문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리버가 태어난 이후 부모는 난교를 실천하는 사이비 종교 ‘하나님의 자녀들’에 빠졌다.
불사조가 되었다

종교의 허황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환멸을 느낀 가족은 빠르게 미국으로 도망쳤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성을 ‘바텀’에서 ‘피닉스’로 바꿨다. 불사조가 되어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피닉스 가족. 그러나 히피 출신에 사이비 종교까지 빠졌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가방끈이 짧았다. 배운 거라곤 포교를 위해 시작했던 기타 치고 노래하는 것뿐. 5남매는 생계를 위해 춤추고 노래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외모와 분위기를 가졌던 아이는 리버 피닉스였다. 이를 지켜보던 한 아역 배우 에이전트가 리버를 데뷔 시키기 위해 부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부모는 에이전트에게 리버를 데려가기 위한 조건을 내걸었다.
“5남매 모두 계약해라”
리버 피닉스가 어찌나 탐이 났던지, 에이전트는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그들은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얼굴 천재, 연기 천재

리버 피닉스는 여러 드라마에 출연 후 에단 호크와 함께 <컴퓨터 우주탐험>을 시작으로 영화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다음 작품 <스탠 바이 미>를 통해 미디어의 극찬을 받고, 모두가 입을 모아 차기 대스타로 리버 피닉스를 지목했다.

<아이다호>에서는 몸을 파는 남자 역할을 맡아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짙은 우정을 몰입감 있게 선보여 꽃미남 배우의 인기는 절정을 달했다. 나오는 작품마다 그는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줬다. 피아노 치는 연기를 위해 악보도 볼 줄 몰랐던 그는 피아노를 배워 직접 연기하는 집념이 담긴 <허공에의 질주>까지. 긍정적인 고집불통 리버 피닉스는 배역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리버는 우리의 우상

리버 피닉스의 동생, 호아킨 피닉스도 형 못지않은 메소드 연기의 달인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우상으로 형을 뽑았다. 자유롭고 반항적인 이미지의 리버 피닉스는 많은 아역 배우들의 우상이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리버 피닉스의 2인자를 자처했을 정도니까 말 다 했다.

제발 우리 형 좀 살려주세요
1993년 10월 31일, 조니 뎁이 운영하던 클럽 ‘바이퍼 룸’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던 리버 피닉스. 당시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지만, 약속을 지키려 감기약을 먹고 그의 여자친구 ‘사만다 마티스’, 호아킨 피닉스와 함께 참석을 했다.
그날 새벽, 리버 피닉스가 바닥에 쓰러져 오랫동안 발작을 일으켰다. 동생 호아킨 피닉스는 911에 전화해 “제발 형을 살려주세요”라며 애원했다. 그러나 결국 23세의 나이로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

여자친구였던 사만다 마티스의 말에 따르면,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가 리버에게 “기분 끝내주게 만들어줄 거다”라며 건넨 음료를 마신 뒤 뭘 탄 거냐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호아킨 피닉스가 형을 살리기 위해 911에 걸었던 전화 내용이 방송에 공개되고, 리버의 시신 사진을 찍거나, 집 앞에 기다리며 도청 장치를 몰래 심는 등 죽은 후에도 편히 쉬지 못했다. 예의 따윈 안중에도 없는 미디어에 진절 머리를 느끼고 호아킨 피닉스는 할리우드를 떠났다.
여전히 리버 피닉스의 죽음에 관해 조니 뎁이 사건을 덮으려 했다, 원래 약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등의 여러 이야기가 소문으로 돌고 있다.

히피 부모 밑에서 자라며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가족을 위해 일만 했던 리버 피닉스의 삶.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언제나 동생들의 우상이었고, 호아킨 피닉스는 포기하지 말라는 리버 피닉스의 말을 마음에 새기며 연기를 다시 시작해 아카데미 수상까지 하는 대배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