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열여덟 살 소녀가 파리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이름은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 그녀는 첫 문장부터 모든 것을 흔들었다.
“나는 그때 슬픔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한 그녀의 데뷔작 <슬픔이여 안녕>은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작품이 됐다. 그리고 사강은 단숨에 스타 작가로 올라섰다.
슬픔이여, 안녕

당시 사강은 철학 시험 준비 중 연습 삼아 쓴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원고는 단숨에 출간됐고, 20개국에 번역되며 판매량 수백만 부를 돌파했다. 대중은 그녀의 냉소적인 문장에 매료되었다.
프랑스는 *샤를 보들레르 이후 새로운 퇴폐의 시대를 만난 듯 열광했다. 그녀는 이때부터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10대 작가’로 불렸다.
*샤를 보들레르 : 프랑스 퇴폐 문학의 선구자. <악의 꽃>, <파리의 우울> 등을 집필했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다

사강의 삶은 말 그대로 자유분방했다. 결혼과 이혼을 거듭했고, 셀럽과의 스캔들에도 자주 오르내렸다.
어느 날, 그녀는 직접 스포츠카를 몰고 레이싱 대회에 참가했다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후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 사고는 신체뿐만 아니라 그녀의 문체와 작품의 분위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장기간 병상에 누워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한 달 후, 일년 후>는 전작보다 훨씬 더 어둡고 깊다. 사강 작품의 핵심 주제인 ‘사랑의 부재, 존재의 허무’는 이 시점부터 본격화됐다.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작가로서의 삶을 꾸준히 이어갔다. 유명세를 얻으며 파리의 밤문화 속 예술가들과의 교류도 계속됐다.
그 가운데, 사강의 삶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문장’이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이 시기에 집필됐다. 사고 이후 그녀의 감정적 성숙과 문체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되다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사강은 프랑스 언론의 집중 타깃이 됐다. 그녀는 코카인 소지 및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되며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프랑스 사회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담담히 말했다.
“나는 마약에 중독되지 않았다. 중독된 건 내 인생 그 자체다”
이후 그녀는 세금 문제에도 연루되며 경제적으로도 몰락했다. 글을 써도 더 이상 베스트셀러는 나오지 않았고, 건강은 악화됐으며, 친구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사강은 끝내 펜을 놓지 않았다.
“슬픔은 이제 내 안에 있다”
마지막까지, 그녀답게

69세의 나이로 사강은 생을 마감했다. 사망 당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난했지만 여전히 글을 쓰고 있었고, 작품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프랑스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고, 미테랑 전 대통령의 딸은 그녀를 ‘자유의 얼굴’이라고 칭했다.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었던 프랑수아즈 사강의 생애는 하나의 거대한 소설이었다. 문장보다 더 뜨겁게 살아낸 그녀의 이야기는 여전히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