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철학은 없다, 카메라가 있을 뿐

지난 2021년, 남창동에 위치한 전시관 ‘피크닉(Piknic)’에서 미국의 예술가 ‘사울 레이터(Saul Leiter)’의 전시가 열렸다.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라는 제목의 전시는 그의 사진들로 가득 채워졌다. 

요즘은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면 사진부터 영상까지 손쉽게 찍을 수 있다. 그만큼 사진은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예술보다는 언어와 몸짓, 표정 같은 하나의 표현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전시의 결과는 놀라웠다. 사울 레이터의 전시는 예매 열풍이 불었고, 제발 기간을 늘려달라는 요청이 빗발치자 피크닉은 기간을 한 달 연장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인데, 그의 전시는 어떻게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수백수천 번 반복해서 찍을 수 있는 요즘 시대의 카메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90년대의 분위기 그리고 사울 레이터의 환상적인 시선 때문일 것. 

실험적인 구도와 과감한 여백, 강한 색채로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는 미국의 예술가 사울 레이터. 오늘은 그에 대해 알아보자. 


예술가를 꿈꾼 랍비의 아들

사울 레이터의 아버지는 탈무드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랍비였다. 자연스럽게 그 또한 랍비가 되기 위한 공부를 어린 시절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예술가의 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유년기부터 사진과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12살이 되던 해에 선물로 카메라를 손에 쥐여주었다. 

사울 레이터는 카메라의 매력에 푹 빠졌다.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다녔고, 원하는 장면과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진'의 힘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영향은 강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꿈을 잠시 접어두고 신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나의 삶을 바꾼 은사

‘사진가 사울 레이터'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은 ‘리처드 포제트-다트(Richard Warren Pousette-Dart)’. 그는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 예술가다. “엥? 사진가에게 영향을 준 인물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맞다. 사울 레이터는 사진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사망하기 전까지 사진 활동은 물론이고, 그림도 그렸다. 

리처드는 사울 레이터의 은사다. 23살이 된 사울 레이터는 신학교를 그만두고 예술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추상 표현주의 화가 리처드를 만난 것. 그는 또 다른 전설적인 사진가 ‘윌리엄 유진 스미스(W. Eugene Smith)’와 함께 사울 레이터가 본격적으로 사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35mm 라이카

컬러 사진의 세상을 연 사울 레이터. 그 역시 활동 초창기에는 흑백 사진을 찍었다. 그가 선택한 사진기는 ‘라이카(Leica)’사의 35mm 단렌즈 카메라였다. 그는 이 카메라로 1948년, 25살이 됐을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컬러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 어쩌라고"

그는 곧 컬러 사진의 매력에 푹 빠졌다. 1950년대에는 컬러 사진의 색 표현이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었다. 현실을 왜곡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사울 레이터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남들의 시선과 평가는 뒤로하고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장면을 계속해서 포착했다. 

그래, 당신이 옳았어

5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사울 레이터의 노력은 후반에 이르러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57년에 뉴욕현대미술관의 <Experimental Photography in Color> 전시에 그의 컬러 사진 20장이 포함된 것. 이때를 계기로 사울 레이터의 컬러 사진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예술가와 거리가 멀었다

오랜 시간 공들인 끝에 주목받기 시작한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 하지만 그의 예술적 사진 활동은 이후로 한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사울 레이터의 이름과 그의 사진은 예술보다 상업적인 사진 활동을 통해 더 알려졌다. 그는 1950년대 후반부터 <하퍼스 바자>, <에스콰이어>와 같은 패션 매거진과 함께 작업했다. 강한 색채와 독특한 구도의 사진은 패션계와 만나 좋은 시너지를 발휘했고, 다양한 패션 출판물에 기여하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머쥘 수 있었다. 

빗방울로 뒤덮인 창문이 유명한 사람의 사진보다 더 흥미롭다

사울 레이터의 비상업적 사진 작품이 주목받은 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는 무려 60년 동안 이스트 10번가의 한 아파트 건물에서 거주하며 매일같이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는 이 사진들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의 사진이 알려지게 된 계기도 그의 노력이 아닌, 우연히 업무차 뉴욕을 찾았던 독일 출판사 ‘슈타이들' 대표에 의해서였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은 놀라웠다. 의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거리의 일상을 담백하게 담아냈다. 동시에 그의 독창적인 시선이 담겨있었다. 빗방울로 뒤덮인 창문에 비친 낯선 이의 모습, 카페에서 조용히 신문을 보며 글을 쓰는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 빨간색 우산을 쓰고 거리를 지나는 행인 등 지극히 일상적인 도시의 모습이었지만, 마치 물감으로 칠한 듯한 색채는 회화적인 매력을 풍겼다. 또 과감하게 장면 일부를 가리거나 제거하고, 특정 피사체에 포커스 하는 마술 같은 구도와 촬영기법은 감탄을 자아냈다. 

In No Great Hurry

사울 레이터의 삶은 곧 ‘사진'이었다. 매일 집을 나설 때 카메라를 가지고 나갔다. 그리고 매일 똑같은 거리를 촬영했다. 그는 멀리 떠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삶이 있는 지역의 거리를 묵묵히, 계속해서 촬영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명성과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삶을 반복적이고, 평화롭게 보내며 ‘사진을 찍었다.’

사울 레이터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In No Great Hurry>는 그런 그의 조용하고 서두르지 않는 삶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세상에 가르침을 주기보다 세상을 그저 바라보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그의 조용하고 느린 삶을 관찰하고 싶다면 시청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