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소비하는 것에 지친 당신을 위한 영화 5선

무의식적으로 켠 숏츠와 릴스 탭에서 엄지손가락을 허우적대는 데에 여가 시간 대부분을 소비하고 나면 공허함만이 남는다. 방금 전에 본 영상조차 기억에 남지 않는데 무엇이 남으리. 우람찼던 새해의 열정이 식은 당신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어줄 영화 5편을 소개한다. 작품을 통해 10초짜리 영상에 길들여졌던 집중력을 한껏 늘려놓고 나면, 어느 것도 두렵지 않을 것. 재미와 여운, 인생 교훈은 덤이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가주의적 특성은 제 것만의 모양으로 갈고닦아져,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라는 작품으로 집결됐다. 색감, 평면성, 위트 있는 대사뿐만 아니라 특유의 ‘연극식 연출’이 완벽하게 스토리와 어우러진 것.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는 로알드 달의 인기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돈이 넘쳐나는 남자, 헨리 슈거가 도박에서 속임수를 쓰기 위해 비범한 기술을 배우는 것이 주된 내용. 

헨리 슈거 역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았다. 30분이 조금 넘는 러닝 타임은 끝없이 이어지는 내레이션으로 채워졌는데, 놀라울 정도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바통을 넘겨받으며 내레이션을 하는 배우들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몰입감을 선사할 것.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보다 약 13.8배 더 재밌었다. 


남극의 쉐프

쫄깃하게 심장을 펌프질해 줄 영화를 찾고 있다면 <남극의 쉐프>는 건너뛰자. 해발 3,810m 평균기온 -54℃라는 배경과는 달리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잔잔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니. 영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야기는 쉐프인 니시무라 준이 갑자기 남극 돔 후지 기지로 발령 나면서부터 시작된다. 1년 반 동안 8명의 대원들과 함께 오도 가도 못한 채 생활해야 하는 것. 

하지만 일상적인 연출과 스토리에 더해진 주인공만의 나른함은 ‘휴먼 코미디'라는 수식어를 완성시켰다. 느긋한 오후, 밥 친구가 필요할 때 시청하면 좋을만한 영화. <카모메 식당>, <심야 식당>과 같은 대표 일본 음식 영화에 참여했던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오미가 참여한 작품이다. 궁극의 ‘남극 요리'로 영상미까지 느껴볼 수 있으니 저장해둘 것. 


시체가 돌아왔다

필자가 사랑하는 B급 코믹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 이범수가 치밀하기 짝이 없는 브레인 캐릭터, 백현철 역을 맡았고 김옥빈이 시크한 행동파 캐릭터 한동화 역을 맡았다. 가장 중요한 ‘감칠맛’을 더한 것은 똘끼 가득 캐릭터 안진오를 연기한 류승범. 특유의 코믹스러움과 ‘말맛’으로 “류승범이 류승범했다"라는 평을 받았다. 이야기는 고가의 기술이 탑재된 칩을 김회장이 이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의기투합한 척, 시체를 독차지하려는 이들의 반전 서사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요소. 정만식, 오정세, 고창석, 배정남 등 쟁쟁한 조연배우 덕에 건너뛸 구간이 없다. 약속 없는 주말, 남는 시간을 죽여보고 싶다면 <시체가 돌아왔다>를 시청해 볼 것. 


솔트

안젤리나 졸리의 액션은 언제나 옳다. 첩보, 스파이, 러시아, 총격전, 안젤리나 졸리. 상징하는 키워드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만으로도 스토리를 알 것만 같은 영화 <솔트>. 필립 노이스 감독은 캐스팅 단계를 회상하며 원래는 주인공으로 톰 크루즈를 내정하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출연을 거절한 뒤, 안젤리나 졸리가 캐스팅되며 주인공의 성별이 뒤바뀐 것. 

이러한 캐스팅 비화가 믿기지 않을 만큼 안젤리나 졸리는 완벽한 ‘에블린 솔트’를 연기했다. 액션물 클리셰가 넘쳐나지만, 그녀의 연기력 하나로 모든 개연성을 부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그 ‘통쾌한 맛’을 원한다면 <솔트>가 답이다. 


프렌치 디스패치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두 작품이나 소개했다고 지겨워하지는 말자. 필자 입장에선 두 작품밖에 소개하지 않았으니. <프렌치 디스패치>는 갑작스러운 편집장의 죽음으로 ‘프렌치 디스패치'의 최정예 저널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지막 발행본을 완성한다는 내용. 옴니버스 형식의 이야기는 실제 신문기사를 읽듯, ‘쇠락과 사망 섹션', ‘지역색 섹션’, ‘예술과 예술가 섹션', ‘정치와 시 섹션', ‘맛과 냄새 섹션’으로 나누어져 전개된다. 

웨스 앤더슨이기에 총출동 시킬 수 있었던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왕중왕전 수준. 틸다 스윈튼, 빌 머레이, 애드리언 브로디, 티모시 샬라메, 레아 세이두, 오웬 윌슨, 윌렘 대포, 시얼샤 로넌, 에드워드 노튼… 나열하기도 힘든 배우들이 세밀하게 웨스 앤더스식 대사를 소화하며 연기력을 입증했다. 영화를 통해 ‘몰입'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