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수는 이곳을 갑니다, 도쿄 빈티지 패션의 성지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빈티지는 천대받았다. 물론 극성 마니아들을 필두로 일부 유저들이 있었지만 그들만의 리그였을 뿐, 이해받지 못했다. 

그랬던 빈티지 패션이 최근 들어 폭풍 성장하고 있다. 누구나 살 수 있는 흔한 아이템이 아닌, 세상에 하나뿐인 희귀한 피스를 향한 열망이 뜨거워지고 있다. 수요가 늘어나니 공급을 위한 숍들이 많아졌고, 사전 지식이 필요한 만큼 정보를 알려주는 유튜브 커뮤니티의 팔로워도 대폭 증가했다. 

하지만 아직 바다 건너 이웃나라 일본의 빈티지 문화를 따라잡기엔 한참 모자란 수준. 옷에 진심인 사람들은 보물을 찾아 원정을 떠나기 시작했다. 

소식을 듣고 최근 90s 리바이스를 통해 빈티지 리그에 합류한 필자도 득템의 기회가 도처에 널려있다는 도쿄를 찾았다. 유한한 시간의 가치를 고스란히 간직한 빈티지 피스를 찾아 떠난 필자의 여정을 함께해보자. 


아기자기한 골목을 꽉 채운 상점들

도착해서 짐을 풀고 처음으로 향한 곳은 현지인들조차 입 모아 추천하는 ‘고엔지(Koenji)’. 도쿄의 중심 신주쿠에서 4정거장 거리에 있는 작은 동네다. 불과 10분 정도 달려서 도착한 고엔지의 첫인상은 빌딩 숲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신주쿠와 180도 달랐다. 낮은 건물과 아기자기한 상점들, 비교적 한적한 거리는 차가운 도시가 만들어낸 긴장을 풀어줬다. 

발길 닿는 모든 곳에 들어가 보자

고엔지역을 빠져나와 골목에 들어가자 빼곡히 자리 잡은 상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패션, 가구, 소품, 카메라. 상점 대부분이 과거의 물건을 쇼윈도에 자랑스럽게 전시해놨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고엔지를 추천하는 이유를 도착한 지 5분도 안 돼서 깨달았다. 

고엔지에서 빈티지 숍을 추천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거리의 모든 숍이 서로 다른 매력을 가졌기 때문. 쇼윈도에 비치된 상점의 특징을 보여주는 아이템을 확인하고 거리낌 없이 안으로 들어가 보면 된다. 찾아 헤매던 운명의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야생에서 귀한 식량을 채집하듯

위에서 말했듯, 어딜 가도 좋다. 하지만 누군가 멱살을 잡고 콕 짚어서 한곳을 추천하라 말한다면 주저 없이 ‘사파리(Safari)’를 외치며 살려달라 하겠다. 

사파리 스토어는 독특한 이름처럼 야생에서 구한 귀한 식량들을 차곡차곡 모아놓은 듯한 곳이다. 그만큼 귀한 피스들이 많은데, 빈티지를 좋아한다면 정말이지 하루가 부족할 수 있다. 

사파리 스토어는 명성에 걸맞게 고엔지 중심가를 점령했다. 총 네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 각 매장이 서로 다른 콘셉트로 운영되고 있기에 모두 방문해 보는 게 좋다. 아, 물론 네 개의 매장 모두가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문제없이 이동할 수 있다. 

미국인 줄 알았습니다 

사파리 스토어에서는 US 오리지널 브랜드의 빈티지 아카이브를 구경할 수 있다. 군납용으로 제작됐던 오리지널 밀리터리부터 리바이스, 리(Lee), 랭글러와 같은 데님 전문 브랜드, 챔피온과 러셀 같은 캐주얼 브랜드까지 폭넓게 취급하고 있다. 

헤비 한 클래식 빈티지를 원한다면 사파리 1, 사파리 2 매장을 추천한다. 사파리 1은 클래식한 피스들 위주로 꾸며져있고 사파리 2는 ‘더블알엘(RRL)’제품들만 취급하고 있다. 나이키, 컨버스, 반스처럼 캐주얼한 브랜드 스니커즈 및 의류를 원한다면 사파리 3 고텐 지점을 방문해 볼 것. 

이 가격에 이 물건을?

사파리 스토어는 전문점이다. 물건의 가치를 알고 가져왔다. 그만큼 가격은 평균 이상. 전문가들의 큐레이팅이 들어가서 제품 하나하나의 가치는 보증되지만 생각보다 높은 가격은 당신을 흔들 수 있다. 

그래서 추천하는 숍이 바로 ‘세컨드 스트리트 코엔지'. 사파리 3 고텐 스토어 바로 앞에 위치한 거대한 숍이다. 여기는 큰 규모답게 층별로 카테고리를 나눴다. 크게 1층은 여성, 2층은 남성이며 그 안에서도 스트리트 패션과 US 오리지널, 하이엔드 패션으로 구분되어 있다. 여기는 무엇보다 가격이 좋고, 다양한 물건이 있다는 게 장점이다. 슈프림, 스투시처럼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의 빈티지 피스들도 좋은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일본에서 택시는 사치

자, 이제 이동해 보자. 다음으로 향할 곳은 시모키타자와. 고엔지 못지않게 유명한 빈티지 성지다. 고엔지와 시모키타자와 사이는 거리가 짧은데도 지하철로 이동할 경우 30분 이상이 소요된다. 그래서 택시를 탔다. 그리고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너무 비쌌기 때문. 15분 정도 이동했는데 3,000엔이 넘게 나왔다. 일본 택시는 ‘사치'다. 

특징이 없다

택시를 내렸다. 시모키타자와였다. 첫인상은 고엔지와 사뭇 달랐다. 그 어떤 특별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가 그 유명한 시모키타자와가 맞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심을 접어두고 목적지로 설정했던 ‘데저트 스노우(Desert Snow)’로 향했다. 숍이 가까워지자 번화가가 나왔다.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고엔지와 다르게 설렘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특징을 찾을 수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저렴하다, 그런데

시모키타자와에서 유명한 샵인 데저트 스노우. 규모는 사파리 스토어 1호점과 2호점을 합쳐놓은 정도였다. 하지만 내용은 실망적이었다. 가치 있는 빈티지 피스는 거의 없었고, 국내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폴로셔츠, 챔피온 스웻이 많았다. 일본 여행 와서 굳이 방문할 이유는 느끼지 못했다. 

시모키타자와에서의 방황

오감을 만족시켜줬던 고엔지와는 다르게 궁금한 숍이 보이지 않았다. 알래스카, 플라밍고, 피그스티처럼 유명한 숍을 돌아봤지만 역시나 대단히 특별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거리를 방황했다. 여행에서 시간은 돈. 방황은 좋지 않다. 

아무래도 고엔지가 정답입니다

일본에서 빈티지로 유명한 고엔지와 시모키타자와. 두 곳을 여행객 입장에서 모두 가기에는 시간적 부담이 크다. 필자는 시모키타자와는 과감하게 스킵하고, 고엔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추천한다. 소품, 여성의류, 남성의류 모두 고엔지에서 좋은 숍을 찾을 수 있고, 무엇보다 사파리 스토어 만으로도 충분히 구경할 거리가 넘쳐나기 때문. 부디 필자의 여행 기록이 여러분의 소중한 여행 시간을 아껴주는 소중한 정보가 되었길 바란다. 

그들의 문화를 동경하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일본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패션도 마찬가지, 미국의 문화를 동경했던 일본은 복식사를 가져왔고, 자신들의 개성을 담아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연구하며 새로움을 창조하는 경지에 이른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패션 강국으로 성장했다. 미련하게 보일 수 있는 본질에 대한 끝없는 탐구는 결국 탄탄한 문화가 됐고, 단시간에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를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고엔지를 비롯한 일본의 활성화된 시장은 그저 소비를 위한 창구가 아닌, 새로운 영감과 교훈을 주는 자기 계발서가 되어주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