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을 히피 집합소로 만들었던 그 작품

‘폭탄 머리’를 헤어밴드로 둘러 싸매고 나타난 소지섭과 앳된 얼굴에 러프한 갈색 머리를 하고 등장한 임수정.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두 사람은 완전히 대비되지만 묘하게 비슷한 향기를 풍기는 케미스트리로 시대를 풍미했다. “나랑 사귈래! 아니면 죽을래!"’라고 외치는 소지섭의 명대사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 

패션의 격변기라고 불리는 2000년대에 아이코닉한 두 사람의 등장은 대중들의 패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대문 거리를 나가면 모두가 무지개 니트와 어그 부츠, 헤어밴드를 착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 오늘은 그 두 사람의 아이코닉했던 패션을 되짚어볼 시간이다. 유행은 돌고 도는 법이니, 이참에 장바구니에 담을 아이템은 없는지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 빵모자와 헤어밴드

헤어밴드만 컬러별로 주야장천 착용하던 차무혁은 귀국 후, 빵모자로 노선을 갈아탔다. 등장 자체가 워낙 화려했던 지라 ‘차무혁 코스프레'를 하는 이들은 모두 헤어밴드를 착용하지만, 실제로는 빵모자를 착용했던 씬이 훨씬 많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빵모자 유행, 당시엔 어땠을까? 사실 당시 반응도 썩 좋지는 않았다. 

디자인 자체에 대한 비호감보다는 ‘차무혁을 얼굴을 가리지 말아 달라'라는 게 좋지 않은 반응의 주된 이유였다. 2004년 12월 8일 게재된 기사 제목이 <소지섭, 팬들 성원에 “모자 벗겠다">일 정도. 10화에서 그가 모자를 벗고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등장하자, 팬들은 일제히 “이제는 그만 모자를 벗고 얼굴을 드러내라"라는 요청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소지섭 측은 “극 전개상 차무혁과 강현우의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해 썼던 것"이라고 해명하며 진땀을 뺐다.


# 무지개 니트

대중들의 뇌리에 박힌 송은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대부분은 무지개 니트를 걸친 채 호주의 거리를 방황하던 그 모습을 상상할 터. 차무혁의 손을 잡고 뛰쳐나왔던 그 송은채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동대문, 명동, 홍대 거리는 형형색색의 무지개 니트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 유행을 시작한 송은채의 무지개 니트는 바로 CASH의 제품. 네티션 닷컴이 론칭한 브랜드로, 2004년 론칭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송은채 니트' 하나로 급부상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06년, 2년 만에 사업 중단을 알렸다고. CASH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아직도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는 ‘진퉁 무지개 니트'를 찾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오래된 옷장 한구석, ‘CASH’로고가 새겨진 무지개 니트를 발견한다면 지금 당장 중고 거래 사이트에 업로드해 보자.


# 어그 부츠

돌고 도는 유행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이제는 클래식 아이템 계열로 진입한 어그 부츠. 해외에서는 이전부터 사랑받았지만 국내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않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임수정은 당시 사전제작이 아닌 생방송에 가까울 정도로 임박해서 촬영을 진행했기 때문에 인기를 그다지 실감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어그계의 문익점'이라는 칭호를 모두가 인정할 만큼 유행을 선도했던 것은 사실이다.후드에도, 롱스커트에도 자유롭게 매치한 송은채의 어그 부츠는 특유의 ‘소녀미'를 더했다. 송은채식 어그부츠 스타일링을 따라 하고 싶다면 안쪽의 양모가 드러나도록 윗부분을 살짝 접어보는 것을 추천.


# 니트 가디건

패턴과 컬러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차무혁은 수없이 많은 룩을 유행시켰다. 화려한 스트라이프 셔츠와 가죽 재킷을, 브라운 컬러 민소매 조끼와 민소매 티셔츠를, 체크 셔츠와 그래픽 티셔츠를 매치했던 그의 패션은 하나로 정의하기 몹시 까다롭다. 하지만 현시대의 셀럽들이 ‘차무혁’이라는 캐릭터를 재현할 때 택하는 룩은 정해져 있다. 바로 레드컬러 민소매 티셔츠와 헤어밴드, 후줄근한 니트 코트를 조합한 포스터 속 그 룩이다. 

당시 스타일리스트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속 패션의 90%가 브랜드 협찬 제품이었지만 조금 더 입체적인 캐릭터를 위해 몇몇 개의 제품은 직접 현지에서 공수하기도 했다고. 특히 그가 걸친 니트 코트는 디젤이 2000년대에 출시한 디스트레스드 롱 코트로,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기념하는 행사에 전시까지 된 바 있다. 필자는 얼마 전,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니트'라는 이름의 게시물을 우연히 발견했다. 혹시 모른다. 당신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 최무혁 코트를 구매할 수 있을지도.